커피와 꾸는 꿈이 현실이 되다, 강릉 보헤미안

고유주소 시즌2.5 / Vol.35 골목대장 브랜드 (2014년 04월 발행)

커피 마니아들은 국내 최고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강릉시 영진리에 있는 ‘보헤미안’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에디터의 한 가지 의문은 여전했다. 왜 최고의 커피 전문가가 서울을 떠나 한적한 강원도로 가야만 했던 것일까?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가 길을 놓치길 여러 번, 같은 강릉이라 해도 시내와는 거리가 있는 한적한 도로의 샛길을 따라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을 넘어서자 비로소 흰색의 아담한 2층 건물 ‘보헤미안’이 나왔다. 그리고 그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거짓말같 이 진하고 은은한 커피 향기가 기분 좋게 코를 찔렀다. 바로 그 곳에서 굵은 뿔테 안경을 눌러쓴 박이추 대표가 여전히 분주하게 커피를 볶고 내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커피와 꾸는 꿈이 현실이 되다, 강릉 보헤미안 진정성, 배움의 나눔 실천, 궁극의 자기다움, 교감, 미치다
The interview with 보헤미안 대표 박이추

 

한국 커피의 산 역사, 베트남을 품다

 

‘1서 3박’은 110년을 넘어서는 한국 커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고유명사처럼 불린다. 그들 중에서도 박이추 대표는 단연 그 중심에 있다. 전국에 퍼져 있는 100여 곳의 로스팅 업소 중 상당수가 그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를 직접 만난다 해도 이미 수많은 인터뷰와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확률이 높았다.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커피를 볶고 내리느라 수없이 끊어지는 인터뷰, 그리고 일본 억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다소 어눌한 한국말을 번역하듯 들어야 했던 만남의 성과는 확실히 있었다.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넘어선 커피 산업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 돈벌이의 대상이 아닌 평생의 친구로서의 커피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그 커피와 나누는 진정한 교감. 어쩌면 그날의 인터뷰는 커피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커피와 나누는 대화가 아니었을까? 좋은 브랜드가 좋은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그를 통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그 꿈은 이제 베트남을 향하고 있었다.

 

 

왜 강릉까지 오셨나요?

 

박이추 대표(이하 박이추)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자연 속에서 커피와 가까워지고 싶었으니까요.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커피가게와 손님들이 생각하는 커피가게가 달랐던 것 같아요. 서울은… 너무 시끄러웠어요.

 

 

처음부터 줄곧 베트남 얘기만 하고 계십니다.

 

박이추 이제 강릉에 온지도 10년 정도 되었으니 이제 내 할 일은 끝난 것 같아요. 지금은 인구는 얼마 안되는데 가게만 많아요. 물론 누가 알아줘서 베트남에 가려는 것이 아니에요. 커피가 알아주는 거죠.

 

커피가 알아준다… 어떤 의미일까요?

 

박이추 예나 지금이나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는 가난해요. 새마을운동처럼 한두 사람이 아닌 온 마을이 좋아졌으면 해요. 베트남이 커피를 통해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건 커피를 배우는 사람들이 졸업 후에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예요. 단순히 커피를 재배하고 가공하고 내리는 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베트남 학생들이 외국회사에 가면 150~200만 원 받는데 자국에선 25~30만 원 받아요. 경제적으로 보면 당연히 외국에 나가 사는 게 맞지 않나요? 하지만 뭔가가 있는 사람은 베트남에 남겠죠. 그런 사람들을 키워서 동남아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예요.

 

한 곳에 정착하지 않으시는 모습이 이곳 이름 ‘보헤미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이추 커피를 배우던 동경 유나이티드 커피연구소에 커피를 연구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가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일본과 한국을 많이 왕래한 걸 아시고 ‘인터내셔널 커피 하우스 보헤미안’이 어울린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인터내셔널은 왠지 부담스러워서 빼고 ‘커피하우스 보헤미안’이 된 거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커피집의 기준은 뭘까요?

 

박이추 오랫동안 알고 있던 일본의 선생님이 십 년 이하의 가게는 커피가게라 할 수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언제 사라지고 없어지고 이사갈 지 모르는 가게들이 많아요.무언가를 재배한다고 하면 보통 봄에 씨를 뿌려서 가을에 수확하는 걸 떠올리죠. 하지만 커피나무는 달라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죠. 저는 커피집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돈 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돈이야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제자를 키우셨어요.

 

박이추 제자라기보다 수강생이라고 하는 편이 맞죠. 굳이 제자라면 서로 협력하는 사람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 사람 역시 나름대로 지켜야 하는 세계가 있는거고. 직접 그들의 계획에 참여는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라도 밀어주고 격려하는, 그런 사람이 진짜 제자인 거죠. 밖에서 자기가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강생이에요. 진짜 제자는 채 열손가락이 되지 않아요.

 

선생님에게 커피는 어떤 존재인가요?

 

박이추 남이야 믿든 안 믿든 ‘커피의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커피도 살아있는 존재라고 믿는 거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커피와 같이 걸어가는 거예요. 내가 힘들 땐 커피가 당겨주고 커피가 힘들 땐 내가 당겨주는 거죠. 누가 먼저 앞서지않고 같이 걸어가는 그런 관계랄까. 물론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죠(웃음). 맛있는 커피는 커피 자체가 아니라 그 커피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그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이 커피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박이추 미쳐야 해요. 커피를 흔히들 악마의 음료라고 하죠.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미쳐야 그 (좋은 의미의) 악마를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통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기적을 믿어요. 믿으니까 그 기적이 자꾸자꾸 일어나요. 제가 베트남에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시간이 걸려도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믿음을 가지고 해결해가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그런 기적은 주변에 베풀 줄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나요.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좇는 사람에게는 그런 기적이 절대 일어나지 않죠.

 

선생님이 만난 친구, 커피는 당신에게 무어라고 말하나요?

 

박이추 ‘내 운명이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커피를 잘 보살피면 맛있는 커피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맛이 없는 커피가 돼요. 내가 할 일은 커피와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있을 때그걸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맛있는 커피가 될 수 없죠. 이런 건 사람한테 얘기하지 않으려해요. 자꾸 남에게 이야기하면 이루어지기 힘드니까. 커피와의 진짜 대화는 제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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