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끝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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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주소 시즌2.5 / Vol.30 브랜드와 부(富)랜드 (2013년 05월 발행)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관심이 많고 끊임없이 연구하지만, 아직도 인간은 인간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직장 동료를 정말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브랜드를 인간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관심이 많고 끊임없이 연구하지만, 아직도 인간은 인간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직장 동료를 정말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브랜드를 인간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브랜드는 인간의 뇌처럼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자연은 생태계라는 자연법칙을 따르지만, 인간이 만드는 브랜드는 판타지, 욕망, 허영, 감동, 가치, 열정, 소명, 생존 등 수많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변수로 시장법칙을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브랜드는 이런 기괴한 시장 법칙의 결과다. 인간은 브랜드 법칙이 만들어낸 브랜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이 주변을 살펴보면 모두 브랜드다. 물론 브랜드라고 모두 같은 브랜드는 아니다. 자칭 명품 브랜드라고 주장하는 상표부터 예술에 가까운 작품과 같은 브랜드까지 수많은 브랜드가 시장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브랜드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놀랍게도 체계적인 가설과 이론을 세운 학문으로 정리된 것은 20년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브랜드 책을 살펴보면 브랜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모험담과 간증 서적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들의 책을 살펴보면 예전부터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왔던 광고와 판촉의 연장 선상에서 다양한 사례만 붙여서 브랜드 책이라고 부르는 것도 더러 있다. 그런 책 중에 경영 전문 용어를 사용해서 브랜드 이론을 공학적으로 설명한 책들도 있다.

 

이런 브랜드 책을 열심히 읽고 자신의 비즈니스 분야에 적용하면 루이비통, 할리 데이비슨 그리고 코카콜라와 같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책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시장 현장을 보면 책과 다른 브랜드 현실이 보일까? 안타깝게도 서점에 나와 있는 서적의 브랜드 이론과 거리의 브랜드 현장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개는 브랜드 책을 보면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작동하는 브랜드를 설명하라고 하면 고개를 숙인다.

 

 

시즌 2.5를 통해서 배운 게 있다면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어려운 내용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압축해야 했다.

 

 

왜 대기업은 광고비로 수천억에서 수조 원의 돈을 쓰고, 많은 인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를 만들어 내지 못할까?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궁극적 가치가  ‘신뢰’이기 때문에 돈과 인지도만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또 이론만으로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다.

 

이렇게 복잡한 브랜드 지식을 《유니타스브랜드》는 그동안 어렵게(?) 이야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의도적으로 어려운 지식을 알기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브랜드의 황금 법칙이 존재하고 그것을 대입하면 황금알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학이 없으면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다고 이제 막 시작한 브랜드 런칭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6년 동안 진행한 시즌 1, 2를 통해서 ‘이론’은 없지만 ‘사실’은 존재하는 브랜드 현장 이야기를 여과 없이 쏟아 냈다. 나는 증적으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반화의 오류’를 피하려다가 결국 ‘특수화의 괴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재미가 없으면 지식은 소용없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스마트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재미만 찾게 했을까? 사람들은 지하철, 기도실, 도서관, 회의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의  90% 이상은 게임, 문자 그리고 메일이다. 요즘 1시간 동안 한 곳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책을 읽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스마트폰을 가지고 브랜드 신상품을 찾는 사람들에게 《유니타스브랜드》의 시즌 1, 2는 그야말로 따분한 학술 책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시즌 2.5에서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만들기 위한 작업을 했다. 물론, 내용을 의도적으로 쉽게 만든 건 아니다. 다만, 쉬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았다. 어려운 브랜드 지식을 자신의 브랜드 현장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북, 브랜드 런칭에 관한 실전 이론을 엿볼 수 있는 편지, 같은 주제를 수십 명의 관점으로 서로 확인하는 교차 인터뷰 그리고 이번 호는 만화라는 형식을 빌렸다.

 

하지만 이번 시즌 2.5를 통해서 배운 게 있다면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어려운 내용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압축해야 했다. 아티클은 생각을 글로 쓰면 되지만, 이번 Vol. 30의 만화는 글이 아니다. 브랜드가 주제인 메시지를 등장인물, 환경, 대사, 갈등, 위기 그리고 관계로 ‘설정’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나온 《유니타스브랜드》보다 5배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예전에는 에디터와 디자이너가 《유니타스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이번 호는 에디터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작가, 감독, 기획자 그리고 만화가(스케치하는 사람, 색깔을 입히는 사람 그리고 배경을 그리는 사람 등)가 참여했다. 먼저 그들에게 브랜드를 이해시키고, 주인공을 휴먼브랜드로 만들고, 여러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제각기 걸어가야 할 운명과 우연을 편집(?)했다. 그리고 브랜드를 운명의 선물로 연출해야만 했다. 단순히 브랜드를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이런 만화 형식을 빌린 것은 아니다. 만화를 통해서 브랜드가 탄생되는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사실과 허구가 섞인 팩션(Faction)을 통해서 현재 일어나는 브랜드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앞으로 시즌 2.5에 나오게 될 재미있는(?) 《유니타스브랜드》는 SF 팩션(Faction)과 소설 형식을 차용할 계획이다.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다.’

복선은 영어로 foreshadowing, 미래의 그림자로 해석하면 된다. 일상에서 그림자는 그 길이와 방향으로 현재의 시간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야기에서 사용하는 복선도 이야기의 주제와 방향을 설명한다. 솔직히 말해 이번 만화 작업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이런 수많은 복선을 직렬과 병렬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이번 만화가 단순히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부랜드》의 시즌 1으로 제작한 책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만화에서 나오는 브랜드를 현실로 끌어올 수 있게 설계했고, 만화가 끝나면 브랜드에 관한 창의적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게 제작했다. 만화의 흐름에서 브랜드의 기본 관점을 배울 수 있다.

 

가장 훌륭한 복선은 ‘복선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복선’이다. 이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만화를 보기도 전에 숨겨진 복선이 있다고 소리치는 것은, 잘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결국 미로처럼 복잡해진 복선 때문이다. 독자가 애써 만든 복선을 모를 것 같아서 우려되고, 복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시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된다.

 

 

가장 힘든 것은 먼저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후에 <토이 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물론 나는 스티브 잡스처럼 쫓겨나지 않은 상황에서 만화를 제작했지만, 컴퓨터를 만들어 팔던 스티브 잡스가 처음 접한 만화 작업에서 얼마나 어려움을 느꼈을지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컴퓨터를 팔았던 스티브 잡스는 <토이 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주인공이 주인공되기 위해서는 운명과 싸워야 한다는 것도, 결국 운명은 운명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의 생명을 취할 거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는 자신만의 운명 대본을 <토이 스토리>를 보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누구도 브랜드 및 사업 계획서를 쓰면서 ‘끝’을 기획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사라질 것이다’라고 쓴 사업 계획서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든 스토리는 ‘끝’이 있다. 나아가서 모든 종교의 이야기도 끝이 있다. 나는 이번 만화를 기획하면서 처음으로 ‘끝’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수년 동안 영속 가능한 브랜드 이야기만 쓰다가 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야기를 쓰려니 상황 자체가 어색했다. 가장 힘든 것은 먼저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자기가 죽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되지.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영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브랜더의 끝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유한한 생명의 브랜더가 영원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이 질문을 가지고 Vol. 30을 발행하기도 전에 우리는 Vol. 31을 준비하고 있다.

 

《애플 코드와 애플 시드》라는 특집으로 기획된 ‘스티브 잡스 스토리’다. 단순히 그의 일생과 애플의 성공 이야기는 아니다. <공각기동대>에 영감을 주고, 구글 안드로이드 명의 기원이 담겨 있는 《미래의 이브》라는 책은 1886년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이 썼다. 이 책을 기반으로 제작, 1993년에 방영한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가 등장하고 스티브 잡스의 죽음과 동시에 시작된 또 다른 애플 씨앗을 찾는 일로 Vol. 31을 구성했다. 아마 《유니타스브랜드》 Vol. 1을 가지고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꼭지를 기억할 것이다. 정기구독자라면 아마도 창간 이후 연재되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도 알 것이다. Vol. 1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Vol. 31에서 끝맺으려 한다.

 

이번 Vol. 30을 만화로 구성한 이유는 지식의 시작과 끝을 알고 싶어서다. 최근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이번 Vol. 30도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다. 비록 이렇게 시작한 것이 어떤 끝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변화와 끝을 의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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