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착한 브랜드에 담긴 욕망의 코드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배근정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참, 착한 책이네요.” 얼마 전, <오스티엄Key>에 실릴 사진을 도네이션(donation) 받기 위해 한 사진 작가를 만났다. <오스티엄Key>를 한 참 펼쳐 보던 그 작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다름 아닌 이 말이었던 것이다. ‘어떤 질문은 인생의 답을 가지고 있다’라는 컨셉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주제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구성된 이 책에 대해 그는 왜, ‘착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그의 생각을 콕, 집어 알 수는 없겠지만 두 가지 정도로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편집자가 말하기 쑥스러운 멘트지만) <오스티엄Key>가 삶을 살찌우는 내용이라는 뜻일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책이 쓰이는 용도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이 책의 수익금은 NGO 단체를 통해 세계 어느 곳이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 그런데 이 말보다 그의 다음 말이 더욱 놀라웠다. “<오스티엄Key>가 하는 일이라면 이제 뭐든지 돕겠습니다.” 불과 5분 전, <오스티엄Key>를 난생처음으로 펼쳐 본 그가 <오스티엄Key>에 대해 이토록 맹목에 가까운 ‘믿음’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5,000원을 가뿐히 넘는 스타벅스 커피는 소위 ‘된장녀’의 필수품으로, 스타벅스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로서의 가치와는 별개로 ‘나쁜소비’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런데 십 년 후쯤이면 이 된장녀가 적어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그런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서에는 ‘해프닝’으로 기록될는지 모르겠다. 2009년 9월 15일,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전국 300여 개 매장에 ‘셰어드 플래닛 인증 원두’를 사용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셰어드 플래닛은 원두의 품질, 거래의 투명성, 사회적 책임, 환경 보호 등 4개 기준의 200여 개 절차를 모두 충족한 원두에 부여되는 것으로, 원두를 사는 사람은 양질의 원두를 얻을 수 있고, 원두를 파는 사람은 그 대가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두가 사고 팔리는 과정에서 생긴 일정 금액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복지 기금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결국, 9월 15일 이후부터 스타벅스 커피를 구매하는 모든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사회에 ‘공헌’한 셈이 된다. 스타벅스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스타벅스가 언론사를 통해 발표한 설명문에 그 이유가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스타벅스가 펼치는 사회 공헌 캠페인 중의 하나입니다.”

 

이 문구는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저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이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2005년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KPMG의 조사에 따르면 포춘 250대 기업 중 45%가 기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환경, 사회 등의 분야와 관련된 사업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것은 1999년 35%와 비교할 때 10%나 높아진 수치다. 이처럼 전 세계가 유행처럼 이른바 ‘착한브랜드’가 되는 방법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대형 마켓에 들어가 그곳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 중 무작위로 몇 개만 골라도 그 중 한 개는 분명, “이 제품의 수익금 중 1%는 도움이 필요한 것에 기부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을 거라는 확신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착한브랜드’란 CSR을 통해 기업의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 만든 브랜드나 또는 브랜드의 수익금 중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브랜드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9월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공개했다.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기업 사회 공헌활동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0%가 “사회 공헌 활동이 우수한 기업의 제품을 ‘비싸더라도’ 살 의사가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것은 착한 브랜드에 대한 ‘믿음’을 확증하는 보증수표를 발행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왜, 소비자들은 ‘착한 브랜드’에 이러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 정답(?)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왜 소비를 하는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소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재화를 소모하는 일.’

 

국립국어원이 정의한 ‘소비(consumption)’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이 정의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정답의 실마리가 들어 있다. 다름 아닌, 사람들이 ‘왜’ 소비를 하는지에 대한 명명백백(明明白白) 한 이유다. 그 이유는 소비의 정의에 보란 듯이 드러나 있는 대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 자, 내친김에 좀 더 쫓아가 보자. 그렇다면 ‘욕망’이란 무엇일까?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또는 ‘생물의 행동을 야기시키는 개체의 동인(動因).’

 

이 두 가지 정의를 재정리해 보면 소비란, ‘부족을 느껴 (생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동인이 되어 그 부족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재화를 소모하는 일’이 될 테다. 여기에 정답에 대한 또 하나의 실마리가 들어 있다. 바로 ‘부족不足을 느껴’가 그것이다. 위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으로 하여금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실체’는 다름 아닌 ‘부족’이다. 뒤집어 말하면, 부족을 느끼지 않는다면 욕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결국 소비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지점이 아주 명확해진다. 바로 ‘부족’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실체’는 다름 아닌 ‘부족’이다.
뒤집어 말하면, 부족을 느끼지 않는다면 욕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결국 소비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다.

 

 

성경에 보면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에 있는 신에게 구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구절이 나온다. 그 중 한 대목은 이렇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차피 (아직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소망’을 (그저) 말하는 것이라면 십 년의 양식을 구한다고 한들 하늘이 두 쪽 나는 이변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딱, 하루 동안 필요할 양만 구하라고 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종교적인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지금 당신의 책상 위에 있는 것들만 살펴보아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아이팟, 파버카스텔 펜, 몰스킨 노트…. 이것은 ‘필수품’이 아니라 ‘옵션’이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수많은 ‘옵션’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필수품’을 가뿐히 넘어서 ‘옵션’까지도 충분히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왜 ‘부족’이 생겨나는 것일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라캉 버전(version)의 욕구, 요구 그리고 욕망의 정의부터 짚어보아야 한다. 라캉은 욕구(Need)란 식욕, 성욕, 물욕과 같이 인간이 가장 일차적으로 느끼는 충동으로, 이것의 최종 목적지는 ‘만족감’이라고 얘기한다. 만족을 갈망하는 욕구는 자연스레 그 다음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을 만족시켜 달라는 ‘요구(Demand)’ 말이다. 그래서 라캉은 “요구란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욕구는 내재된 것이라면 요구는 그것이 언어로 표출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생각해보라. 당신의 모든 요구는 전부 받아들여지는가? 아예 표현조차 될 수 없는 욕구가 훨씬 더 많다. 요구가 표현할 수 있는 욕구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 한에서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5성급 호텔의 뷔페가 먹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당신의 주머니에는 천 원이 전부다. 그렇다면 요구를 표출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욕구의 수에 비해 요구의 수는 반비례하게 되고, 욕구는 언제나 불만족 상태에 놓이게 된다. 라캉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춘다. 욕구와 요구 사이에 생기는 간극을 그는 ‘욕망’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욕망은 ‘결핍’, 그러니까 ‘부족’에서 태어난 것이다. 자, 우리가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욕망의 태생 자체가 바로, 부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은 결핍이다. 그 결핍을 메울 대상을 찾아 나서지만 결코 만족될 수 없기에 또 다른 대상으로 끊임없이 치환될 뿐 영원히 ‘결핍’의 상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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