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보는 세상과 눈을 감고 보는 세상, 두 세상을 가로지르는 좋은 담
Book II. Philosophy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엄정식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실 때의 나이와 비슷한 연배이신 엄정식 교수는 47년 동안 철학을 공부한 분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처럼 많은 철학 지식과 자료가 없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엄정식 교수는 감히 소크라테스보다 더 많은 철학적 사유를 하신 분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인터뷰 중에 혹여, 엄정식 교수로부터 얄팍한 철학 지식으로 브랜드를 설명하려 한다는 책망을 당할까, 인터뷰를 준비하는 내내 불안했다. “브랜드나 제대로 알고 철학에 관한 질문을 하시죠!”라는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여, 준비한 여러 가지 질문들에 철학적 단어로 치장(?)하고 손질하면서 엄정식 교수를 기다렸다. “이 시점에서 악수 한번 합시다!” 엄정식 교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무려 네 번이나 악수를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어떻게 브랜드적 고민과 철학적 번뇌가 비슷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두 가지가 모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엄정식 교수는 경영에서 철학적 고뇌를 흉내 내고 있지만 진지한 태도에 대해서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엄정식 교수가 서강대학교 재직 때(현재 그는 명예교수다) 사람들이 왜 그를 ‘행복한 철학자’라고 불렀는지 백 번은 더 이해가 됐다. 47년 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시작한 연구의 결과들을 지금 브랜드는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내가 읽게 될 것을 그는 알았을까? “*너 자신을 알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든다면 소크라테스는 무슨 말을 했을까? 자신이 누구며, 어떤 소명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처럼,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소명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그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철학자인가, 아니면 경영자인가? 브랜더는 과연 누구인가?

눈을 감고 보는 세상
Q
최근 경영에서는 ‘브랜드 철학’이라는 주제가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시발점은 ‘차별화’를 만들기 위한 ‘포지셔닝(positioning)’을 생각하면서부터입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이른바, 포지셔닝 전략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한 브랜드가 나오면 그와 비슷한 컨셉의 브랜드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겨나 더 이상 ‘차별화’가 무의미해졌죠. 이때 경영자 혹은 브랜더들은 브랜드를 가치, 더 나아가 브랜드가 추구하는 혹은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러면서 ‘철학’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철학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대부분을 철학 연구를 하신 교수님께서는 과연, 철학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나는 누구인가?’ 너무나 짧은 질문이지만, 저는 이것이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제 인생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다닌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 또래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당시 대학의 학과를 정할 때, 의대나 상대, 아니면 경영대를 제 1 지망으로 했지만 저는 철학과를 지망했어요. 내가 누구인지 안 후에 무엇을 안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추억》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이 적합한지 스스로 알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분별하며, 또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는 바를 해냄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고, 그리고는 모르는 것을 삼감으로써 비난 받지 않고 살아가며 또 불운을 피하게 된다네.” 만약,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의사나 경영자가 된다면, 그것은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지 절대로 주체적인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유학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저는 ‘나’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철학을 선택했지만, 제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지요.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이 학문들의 화두가 다름 아닌 ‘*자아의 문제’라는 겁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보는 자아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바로 이 ‘자아’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위해 탐구하는 것이 철학, 더 나아가 인문학입니다. 자아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가 철학을 통해 얻은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인류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보이는 것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사랑, 배려, 이타심, 협력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간에게 언제나 중요한 화두이지 않았습니까. 브랜드도 최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결국 품질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보되거나, 혹은 경쟁을 통해 쉽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교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란 화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A
저는 이 세상을 두 개의 세상으로 구분해서 봅니다. 하나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과 다른 하나는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세상입니다. 먼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을 더 잘보기 위해 현미경을 만들고, 망원경을 만들지 않습니까. 이러한 과학의 시선을 통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이것을 통해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런데 성능이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라도 알퐁스 도데가 본 별과 윤동주가 마음에 품었던 별, 또 생텍쥐페리가 긁적이던 별을 볼 수 있을까요? 못 봅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이 말을 달리 표현해보면 ‘의미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종교가 나오고, 예술이 나오며, 윤리가 나오는 거지요. 자,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세상 중 어느 하나를 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겁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자살’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없지만,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지금 우리 시대는 시장경제가 가격과 가치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가치가 가격에 의해 판단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엄격하게 말해 가치와 가격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가격에 두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치 개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 거지요. 이러한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은 한계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앞서 질문하신 것처럼 상품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별, 그러니까 철학을 담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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