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인의 RAW 오리엔탈리즘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박홍규  고유주소 시즌1 / Vol.7 RAW (2008년 11월 발행)

야만 동양과 문명 서양이라는 이분법 몇해 전 상영된 영화 <트로이>는 ‘문명 서양’의 원조인 그리스가,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왕비를 유혹한 ‘야만 동양’의 트로이를 ‘문명’의 상징인 목마로 쳐부순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용사 아킬레스로 나오는 배우 브레드 피트가 그런 ‘문명 서양’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 이야기는 3천년 전 정도의 옛날 일로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이라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온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서양인은 동양인을 RAW로 보아왔다. 이러한 서양의 관점과 태도를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한다. 이는 문명 그리스를 기준으로 하여 그 동쪽을 오리엔트라고 부른 서양 전통에서 비롯된다.

야만 동양과 문명 서양이라는 이분법

몇해 전 상영된 영화 <트로이>는 ‘문명 서양’의 원조인 그리스가,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왕비를 유혹한 ‘야만 동양’의 트로이를 ‘문명’의 상징인 목마로 쳐부순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용사 아킬레스로 나오는 배우 브레드 피트가 그런 ‘문명 서양’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 이야기는 3천년 전 정도의 옛날 일로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이라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온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서양인은 동양인을 RAW로 보아왔다. 이러한 서양의 관점과 태도를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한다. 이는 문명 그리스를 기준으로 하여 그 동쪽을 오리엔트라고 부른 서양 전통에서 비롯된다.

 

3천년 전 서양인의 세계관은 지중해를 둘러싼 당시의 트로이, 즉 지금의 터키를 비롯한 아랍이나 이집트 정도에 국한되었다. 《일리아드》에 묘사된 터키 이상으로, 이집트는 이집트의 상징인 클레오파트라에서 보여지듯이 야만적이고 미개적일뿐 아니라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RAW의 상징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거의 나신인 그녀가 유혹하는 줄리어스 시저는 서양 정치인과 군인의 모범으로서 문명 서양을 상징한다. 즉 그녀는 문명서양을 망치는 미개 동양의 악녀(팜므 파탈)의 원형이다. 그것에 대응되는 것이 성처녀 마리아임은 물론이다. 즉 RAW는 악, RAW를 개화시키는 문명은 선이라는 선악의 이분법이 확립되었다.

 

성처녀 마리아와 신의 아들 예수를 상징하는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중세 십자군의 전설은 최근 미국의 아랍 전쟁을 수행한 미국 대통령 부시의 ‘악의 축’에까지 이어져온 문명 서양의 오랜 전통이다. 물론 그 사이에 ‘야만 동양’은 터키를 중심으로 한 아랍을 넘어 인도와 중국까지 포함하고 더 나아가 아프리카 아시아는 물론 중남아메리카를 포함하는 비서양 전체를 포함하는 동양으로 확대되었다. 그 기점은 16세기의 서양에 의한 소위 ‘지리상의 발견’ 이래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정복이었으나, 특히 19세기에 와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양의 국민국가가 제국주의로 확대됨에 따라 전 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양을 미개 야만으로 규정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서양의 세계지배의 논리가 되었다. 그것이 20세기 말에 와서 아랍은 물론 북한까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성립된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서양인은 동양인을 RAW로 보아왔다. 이러한 서양의
관점과 태도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이는 문명 그리스를 기준으로 하여
그 동쪽을 오리엔트라고 부른 서양 전통에서 비롯된다
.

 

 

원시의 발견, 고갱의 RAW

오리엔탈리즘에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여기서는 19세기 타히티에서 그곳의 원시를 그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사람이 된 고갱의 경우를 살펴보자. 남태평양의 찬란한 태양, 바닥이 보이는 산호초, 바다와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 수상 방갈로, 관능적인 민속춤. 그 타히티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라 반드시 커플로 가야 한다고 한다. 백 년도 전에 고갱은 혼자 그곳에 갔지만 지금은 혼자서 그곳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만나는 한국인도 반드시 짝이거나 단체이다. 그러나 관광객은 대부분 서양인들이고 더러 보이는 동양인들도 대부분 일본인이다. 즉 식민 관광지이다.

 

아마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고갱 해설서라고 생각되는 타센Taschen 사에서 출판된 《폴 고갱 1848-1903(2001)》의 저자 발터Ingo F Walther는 다음과 같이 글을 시작한다. 이는 아마도 고갱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압축한 것이리라. 두 개의 세계를 방랑한 남자, 폴 고갱만큼 자기 작품의 주제에 자신의 인생을 적합시키고자 한 예술가는 없다. 야만의 원시생활로부터 환기된 근원적인 것, 순수한 조화의 세계에, 그 자신이 속한 타기해야 할 문명을 비추어냈다. 오로지 그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체험하고 싶었다. 자기라는 존재를 통하여 남양의 신비란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고자 했다. 당시의 유럽에는 만국박람회나 신문기사 등에 의해 남양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그 이미지만이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했다. 고갱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그 본질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되고 있다. 예술과 생활의 결합, 환상과 질서의 결합, 즉 20세기 회화의 중심이 된 결합을 몸으로 보여준 예술가이다.

 

 

 

20세기 회화의 중심은 ‘예술과 생활의 결합, 환상과 질서의 결합’이고 그 결합에 의해 고갱이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된다는 평가는 정곡을 찌른 견해이다. 이는 고갱이 스스로 타히티에 살면서 그곳을 그렸기에 생활과 예술, 질서와 환상을 결합하여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러한 결합은 그가 타히티에 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발터의 견해와 달리, 고갱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이유는 그러한 결합이 아니라 ‘원시의 발견’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피카소 등에 의해 원시예술을 더욱 더 강력하게 서양미술에 반영되게 만든 선구자가 고갱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작업을 위해 고갱은 타히티에 가서 살면서 그곳의 원시성을 그려 당대의 화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 원시가 과연 고갱이 그린 ‘순수한 조화의 세계’였는가 하는 점이다. 도리어 그곳은 ‘그 자신이 속한 타기해야 할 문명’에 의해 찌들어 ‘그 자신이 새로 속하게 된 더욱 더 타기해야 할 문명’으로 타락한 식민지 사회가 아니었는가. 고갱이 그 원시를 현실 그대로 리얼리즘으로 그려내어 고발하고자 했다면 고갱은 현대미술의 선구자커녕 그 이름조차 현대미술사에 남지 않고 신문 시사만화가 정도로 인식되었으리라.

 

 


Paul Gauguin. Vision After teh Sermon. 1888

 

 

고갱은 원시의 원색과 건강한 원시인의 모습으로 이전에 그려진 서양미술의 색채나 형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현대미술의 혁명적인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그 원시사회의 혁명을 주장하기는커녕 그 원시사회를 지배한 프랑스 식민지에 속한 사람임을 주의해야 한다. 서양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앞의 발터와 전혀 다른 평가도 있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고갱에게 식민지 독립 운동가이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그는 나름으로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인의 생활을 동경했으며 식민지의 부정에 대항하여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그가 그린 조화의 세계가 식민지의 현실은 아니었고 서양인이 바란 반문명의 그림에 불과한 것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그의 싸움은 소위 ‘훌륭한 식민지 지배’를 위한 것이었지 식민지 지배 그 자체를 파괴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주장한 반문명의 삶과도 분명히 모순된 것이었다. 서양 제국이 식민지로 지배하는 범위 내의 것에 불과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편견과 차별을 낳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화 간의 진정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미술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를 보는 법을 우리는 일본인과 서양인의 눈을 통해 배웠다. 여기서 일본인의 눈은 사실 서양인의 눈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일본인을 우리와 같은 동양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정치경제의 현실관계에서 그들은 어디까지나 제국주의자이고 침략자이다. 가령 고갱을 비롯한 서양화가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철저히 서양인의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바라볼 수 없다. 물론 일본인도 서양인의 입장에는 동양인이지만, 그들은 같은 동양인에 대해서는 서양인처럼 침략자의 입장에 서고, 그 점에서 철두철미 서양인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일본인이 그렇든 말든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 눈을 그대로 닮아왔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분명히 밝히고 싶다. 피침략자 피식민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침략자에게 복수하거나 우리가 침략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인간이기 위해서이다.

 

 


Paul Gquguin. Tahitian Women on the Beach. 1891

 

 

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오류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에 대한 모든 표현’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동양과 서양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먼저 동서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 우리는 흔히 동서양이 만나는 곳을 터키라고 생각하는데, 동서양을 구분하는 기준은 터키 옆에 있는 그리스이다. 즉 서양 고대문명이 싹튼 그리스 동쪽이 동양, 그리스 서쪽이 서양이라는 구분이다. 물론 그리스도 서양에 포함된다. 그런데 그리스를 가보면 누구나 알지만 그곳이 그 옆의 동양이라고 하는 터키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일본과 한국과 중국이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서로 인접한 세 나라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그 세 나라가 당연히 비슷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그 세 나라, 특히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역사 때문이다. 그리스와 터키의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인류 최초의 문학이라고 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보듯이 두 나라 사이에는 옛날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가까운 만큼 원수가 되기도 쉽다. 이는 나라 사이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Paul Gauguin.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

 

 

그런 원수 사이에서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힘이 센 침략자는 힘이 약한 피침략자를 멸시하는 말을 하기 마련이고, 반대로 피침략자도 침략자를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멸시하는 말을 하기 마련인데 그 피침략자의 말은 사실 크게 들릴 리가 없다. 그래서 침략자가 피침략자에 대해 하는 소리만 크다.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런 오리엔탈리즘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편견과 차별을 낳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화 간의 진정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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