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칭의 정치학
‘안녕하신가? 박 차장!’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권민  고유주소 시즌1 / Vol.6 브랜드 런칭 (2008년 08월 발행)

정당의 목적은 정권 획득이다. 그리고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이(특히 남자들이) 모여서 뭔가 궁리를 시작하면 그 과정과 결론은 항상 돈과 권력 그리고 섹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버린다. 이번 신규런칭 프로젝트도 결국 섹스를 제외한, 돈과 권력이 뒤엉킨 이야기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신규 브랜드를 만든다고 할 때에는 저마다 독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먼저 중소기업의 신규 브랜드 런칭은 일종의 생존을 위한 용기 있는 도전일 때가 많다. 성장하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있어서 신규 브랜드는 희망이자 진보일 때가 많고, 정체되거나 퇴보하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있어서 신규 브랜드는 마지막 시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어느 중소기업이나 신규 브랜드 런칭에 대한 마음은 절실하고 진실하다.

 

반면에 대기업에서 시도하는 신규 브랜드의 런칭 목표는 복합다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알아 보기 위해서, 경쟁 기업에서 먼저 진행해서, 오너 경영자의 관심에 의해서, 신규 사업팀의 의무적 보고에 의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고 싶어서(전문용어로는 ‘문어발’이라고 한다), 원래 매출 목표를 원대하게 잡아서, 주식 시장에서 성장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혹은 인력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신규 브랜드를 런칭 한다. 사실 이 모든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나오기 때문에 신규 브랜드를 총괄하는 사람들은 최고 경영자의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라고 지시한 오너마저도 원래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때도 있다.

 

신규 브랜드 책임자가 유일하게 최고 경영자의 의도를 아는 방법은 런칭 멤버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력의 구조를 통해서 경영자의 관심과 조직 내에서 ‘신규 브랜드’가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신규 브랜드를 위해서 내부 다양한 팀의 A급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내부의 B급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외부 인력으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최고 경영자의 ‘패밀리’가 들어가 있는가? 최고 경영자의 오른팔이 하는가? 컨설턴트들과 함께 하는가? 끝으로 내부 조직원들은 내가 신규 팀에 들어간 것을 부러워하는가? 시기하는가? 아니면 불쌍하게 여기는가를 보면서 신규 팀의 미래를 알 수 있다.

 

 

대기업에서의 신규 브랜드 런칭은 좌천이라는 말이 있다. 내부 직원들은 새로운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런칭되길 바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단 신규 브랜드가 잘 되면 기존에 존재하던 자신의 브랜드의 자원과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안 되길 빌곤 한다.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는 패션, 잡화 그리고 작은 홍보대행사를 가지고 있는 중대형급 기업이다. 이 회사에 오기 전에는 한국 20대 대기업의 전략기획팀에서 나름 인정받고 똘똘하게 일을 하는 시장조사 팀원이었다. 대기업의 특성상 ‘전략과 기획’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회장의 그늘 아래에서 열심히 충성 성분 파악과 세뇌 교육을 받는 혈기왕성한 친위대들이었다. 그곳은 신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서 임원들이 성공을 통해서 별을 다는 능력과 태도의 훈련장이었다. 우리 팀에서 가장 뛰어난 상관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한민형 차장이다. 그의 이름 앞에서는 항상 최’자가 달려 있었다. 최고 승진, 최고 대우, 최다 런칭, 최초 기획 등. 나에게 우상이었던 한민형 차장은 IMF 때 갑자기 구조조정 본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일종의 사람들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 일을 싫어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처리했다. 너무나 깔끔하고 숙련되게 사람을 내보냈다. 그리고 한 차장도 모든 일을 마치고 사표를 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누군가는 해야했던 일이었기에 회사를 위해 자원해서 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친구 몇 명과 함께 회사를 만들었다.

 

신규 브랜드를 기획하던 우리 부서는 통째로 날라갔다. 나는 다른 회사에 취직을 했고, 어느 날 헤드헌터를 통해서 한민형 차장이 세운 기업을 소개를 받았다.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한민형 이사(이 회사에서는 총 네 명이 이사직을 맡고 있는데 모두 친구다)와 함께 신규 브랜드를 기획 및 런칭하는 일이었다. 총 7개의 브랜드를 런칭했고, 그 중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어느 날 한 이사는 나를 불러놓고 자신이 잠시 쉬기 위해서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친구 네 명과 공동 대주주이며, 이 회사의 좌뇌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떠난단 말인가? 사실 그 이면에는 네 명의 동업자들간에 일어나는 비전 갈등, 주도권 장악 그리고 본전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결국 돈과 권력에 관한 문제였다. 전략 기획을 맡고 있는 한민형 이사와 브랜드 관리를 맡고 있는 박성필 이사 그리고 인사를 담당하는 최현식 이사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형수 이사간의 의견 충돌이이었다. 우회상장, 브랜드 다각화, 부동산 취득, 실패한 신규 브랜드의 원인에 대한 입장차이, 각자 경영에 대한 다른 비전과 원칙 등이 성장을 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형수 대표이사는 중립이라고 말했지만 암묵적으로 박성필 이사의 의견을 지지 했고, 한민형 이사와 박성필 이사간의 충돌은 비공식적, 나아가 공식 석상에서도 직원들이 느낄 수 있을 만큼 불거졌다. 결국 한민형 이사는 충돌보다는 안정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났다. 어떤 거래와 조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 이사의 일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니깐 차장이 임원의 보직을 맡게 된 것이다. 아마 브랜드 런칭과 기획에 관한 내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한 이사와 같이 퇴사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 할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정장치라고 생각했다. 없던 직무수당이라는 것도 만들어서 나를 잡아 두려 노력했다.

 

 

항상 그렇지만 그림은 멋지게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기에 상상과 현실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갈등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진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상관에게 벌어진 불행이 나에게는 반사 이익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 이사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상황에도 내 이익만 챙기려는 나 자신의 이기심에 대한 실망감이 몰려왔다. 원래 나는 이런 기회주의자적인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기회’만을 찾아 다녔던 이유로 머리가 그쪽으로만 진화 된 것일까? 결국 나는 돈과 권력 그리고 기회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 예상대로 박성필 이사는 자신이 생각했던 기회 시장에 대하여 나에게 조사 및 전략을 기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기업에서의 신규 브랜드 런칭은 좌천이라는 말이 있다. 내부 직원들은 새로운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런칭되길 바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단 신규 브랜드가 잘 되면 기존에 존재하던 자신의 브랜드의 자원과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안 되길 빌곤 한다. 그렇다. 바로 질투다. 그래서 신규런칭을 통해서는 인생, 아니 인간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술과 도박을 할 때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기에 대한 본능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신규 브랜드를 런칭할 때도 위기에 몰린 사람의 본질과 본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매력적인 시장, 트렌드의 거대 물결, 경쟁자의 약점 발견, 시장의 이동 등 외부적인 변화 요인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내부의 반목, 질투 그리고 오해로 인해서 외부의 변화를 추월하지 못하면 결국 도퇴 혹은 공중 분해되고 만다.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는 과정에서는 절대로 정치적이 되지 말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신규 브랜드들은 정치적인 목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순수하게 비즈니스의 목적 아래 시작되었다고 (겉으로) 말하긴 하지만 사람들마다 참여하는 목적과 과정이 다르고, 각자 다른 결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발표하는 런칭 보고서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지뢰들이 숱하게 터지게 된다. 경험에 의하면 런칭 성공의 우선 순위 중에서 최고의 절대 조건은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열정, 바로 브랜드 런칭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과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겨우 성공하거나, 작게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런칭의 용기와 무지 사이에서

새로운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려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글로벌 패스트 패션(Global fast fashion) 브랜드인 ZARA, GAP 그리고 H&M으로 이루어진 빅3들이 한국에 입성했거나 곧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3가 잘되면 이것을 표방하는 수많은 해외 브랜드들이 물밀듯이 들어 올 것이다. 이미 스포츠 시장에서는 나이키를 비롯한 해외 브랜드가 시장의 주도권을 가진지 오래다. 세계 섬유 수출 강대국이라고 말하는 한국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단 한 개의 브랜드도 미국을 비롯한 OECD국가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이번 신규 브랜드 런칭에서는 3단계 확장 모델을 기획했다. 1단계는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런칭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 중국인 파트너와 합자해서 미국으로 런칭하는 것이 2단계이다. 3단계는 미국의 파트너와 합자해서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그림은 멋지게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기에 상상과 현실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한민형 이사가 나간 다음에 나는 그분이 했던 일을 대신하면서 신규 패션 브랜드를 준비했다. 하지만 바로 박성필 이사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차윤희 과장이 신규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녀의 직급과 기능으로 볼 때 적절하게 합류된 팀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서 생각해보자면 나의 업무를 감시, 보완, 저장 그리고 내가 퇴사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일종의 플랜 B를 진행할 책임자로 박성필 이사가 내세운 것이다. 그녀는 내가 했던 시장 조사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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