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미래? 나도 모르고 책에도 없는, 세상에 없던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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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어령  고유주소 시즌2 / Vol.18 브랜드와 트렌드 (2010년 12월 발행)

2006년, 이어령 고문의 《디지로그》가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읽는 키워드로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디지로그는 단순히 디지털 환경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합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얻은 수확 중의 하나가 바로 ‘디지로그’라는 용어의 개념을 저자에게 직접 들으면서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디지로그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며 미래를 읽는 키워드로 아직도 유효한 개념이었다. 더불어 천재 노학자에게 디지로그 이후 발전된 사상과,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부탁했더니 ‘인터페이스 혁명’과 ‘생명자본주의’라고 귀띔해 주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예측해 달라는 질문에는 충격적인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제 미래 예측은 의미가 없는 시대다. 20세기가 합리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우연성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생명은 관측의 대상이 아니며 직접 살아 봐야 안다.” 스스로를 ‘채집 시대부터 후기 정보 사회까지 모두 체험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이어령 고문의 발언이 21세기 하고도 첫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곰곰이 되씹어 볼 일이다.

21세기의 미래? 나도 모르고 책에도 없는, 세상에 없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디지로그, 공명,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인터페이스 혁명, 기술 혁신, 생명자본주의 시대, 생체기술, 우연성, 브랜드와 미래

디지로그는 공진이다.
고문님께서 2006년에 발표하신 ‘디지로그’ 사상은 우리 사회에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 개념은 디지털 시대에 현재와 미래를 읽는 키워드로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항간에 디지로그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로그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설명을 드립니다. 디지로그를 단순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기술에 감성을 섞는 것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반 기술에 아날로그적 마인드를 합성하는 것이 디지로그는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과 공진(共進, co-exist), 즉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실은 저도 2006년에 이 책 《디지로그》를 쓰기 전까지는 디지털에 대해서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제가 디지털 디바이스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국내외에 출시되는 웬만한 소프트웨어는 다 사용해 보는 얼리어답터였습니다. ‘산업화는 늦었으니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깃발을 들고 언론에 각종 칼럼을 쓰고 학교와 정부기관 등에서 많은 강연을 했었지요. 아날로그를 빨리 디지털로 바꾸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10년을 쭉 일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 싶었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대비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넘어오면 이전의 것은 단절하고 그 다음 단계의 사회로 진행되는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날로그를 빨리 벗어나야 발전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냉전이 사라지고 9•11 테러 사건과 같은 비대칭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디지털 정보사회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금융정보사회의 위기까지 닥치는 것을 보고는 아날로그 없는 디지털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디지로그의 ‘공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디지로그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국민이 한국인이라고 하셨는데요.
이렇게 설명해 볼까요? 디지털은 이분법입니다. 칸 매기기 같은 거지요. 그러나 아날로그는 연속체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계단은 디지털입니다. 언덕은 아날로그지요. 지하철을 한번 봅시다. 지하철에는 장애인을 위한 언덕과 같은 슬로프가 있기도 하지만, 그 옆에는 계단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언덕을 깎아 계단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디지로그입니다. 함께 공존하는 것 말입니다. 인터넷으로만 어떻게 연애가 가능합니까? 물론 청각과 시각은 가능하지만 그 외의 감각은 어렵습니다. 디지털에서는 인간의 신체성이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감질나지요. 연인을 만지고 싶어 손을 뻗어 보지만 허공이니까요. 데이트도 인터넷이나 전화로 하다가 시간 되면 공원에서 만나 손도 잡고 같이 걷기도 하는 것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둘 다 활용해야 진짜 연애인 것입니다. 아날로그가 없는 디지털은 무의미합니다. 디지털의 극단으로 가면 갈수록 아날로그의 필요성은 더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보화사회는 디지털 혁명이었지만, 현재와 다가올 미래인 초정보화사회는 지혜와 디지털, 아날로그가 함께 공존, 공진하는 디지로그의 시대, 통합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같이 가야 디지털은 디지털 구실을 하고, 아날로그는 아날로그 구실을 합니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가능성이 많은 나라입니다. 동양적인 아날로그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동양적인 아날로그 사고를 하면서도, 디지털 기술은 누구보다도 빨리 받아들입니다. 이 모순된 것을 가장 잘 합치는 민족이 한국인입니다.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어는 그 민족의 문화와 사고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엇비슷’하다라는 말 보세요. ‘엇’은 다르다이고 ‘비슷’은 같다라는 말인데 우리는 이것을 함께 씁니다. ‘버려둬’도 마찬가지지요. 버렸는데 뭘 다시 둔답니까. 참 안 맞는 단어들이 조합되어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서양은 다릅니다. 엘리베이터를 생각해 보세요. ‘올라가는 기계’지요. 서양은 딱 그것만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두고 오르고 내리는 ‘승강기’라고 부릅니다. 서양은 ‘오르락내리락’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서양은 EXIT, 즉 출구만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나가는 곳이 들어오는 곳이고 그게 ‘출입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두 가지에서 하나를 택일하는 문화가 아니라 모순된 것을 끌어안는 문화입니다. 이러한 동양의 지혜를 두고 괴테는 말했지요. “내 뜰에 심은 은행잎 같구나.” 가운데가 갈라져 하나로 되어 있는 은행잎은 이파리가 두 개일까요, 하나일까요? 이것이 바로 디지로그적 사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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