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없이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다, 도서출판 보리
베어낸 나무의 가치 이상의 것이 배어든 브랜드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윤구병  고유주소 시즌2 / Vol.21 스마트 브랜딩 (2011년 06월 발행)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인가? 죽기 살기로 공부와 경쟁을 해야 한다. 포기는 곧 패배자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1등을 향해 갈수록 주위엔 낙오자가 생기고 나중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들은 전쟁터에서 혼자 살아남은 1인이 돼 있을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수의 연이은 자살 소식이 온 나라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을 무렵, 한 대학 신문에 실린 이 글은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대학 총장과 정부의 정책에 대한 성토,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옹호의 기사들이 줄을 잇지만 정작 학생들은 평균이 무의미한 무한 경쟁 사회의 고단함을 함께 공감하며 슬퍼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쟁’은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공정한 경쟁은 사회, 경제 전체의 발전을 가져오고 그 유익으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달콤한 결과의 함정에 빠져 함께 추구해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경쟁 없이 살아가는 것은 단지 비겁하거나 미련하거나 무능한 것일까? 보리출판사의 30년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웅변해 준다. 바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생’의 방법도 있음을 말이다.

The interview with 도서출판 보리 대표 윤구병, 이사 김용란실장 위문숙

 

 

무한 경쟁의 시대에 공생을 말하는 사람들
“인간은 홉스가 말했듯 경쟁적,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다. 공감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하며, 서로에게 위로 받고자 프로그램 돼 있는 존재다.”

 

최근 간행된 《공감의 시대》를 비롯해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에 이르는 숱한 화제작을 통해 우리 시대 최고의 사회사상가로 자리매김한 제러미 리프킨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긴 말이다. 그는 《공감의 시대》를 통해 ‘더불어 함께’ 살기보다는 ‘나만의 성공’을 부추기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화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럽은 삶의 질과 환경, 공동체 의식을 강조해 미국을 능가하는 ‘슈퍼 파워’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사람이 비단 그뿐은 아니다. 보리출판사 역시 출판사 설립 초기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의 이러한 생각을 전달할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점, 그리고 그 방법을 ‘교육’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윤구병 대표(이하 ‘윤’) 다른 생명체들은 대부분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은 배우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첫 번째 목표다. 또한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은 저마다 부족한 것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메워 가며 살아간다.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교육의 두 번째 목표다.

 

 

한마디로 사람과 자연, 모두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공생의 지혜를 교육과 출판이라는 방법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보리출판사의 목표였던 셈이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는 윤구병 대표가 평생에 걸쳐 만난 권정생, 한창기 등 여러 스승들의 영향이 컸다. 특히 미래 세대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던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가르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했고, 그런 책들을 교과서 밖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출판은 어려운 일이다. 잡지사 편집장을 지낸 윤 대표가 이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출판만큼 좋은 방법도 다시 없어 보였다. 특히〈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얻은 몇 가지 깨달음이 이러한 결심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좋은 책을 만들어 오시던 분들도 힘든 길이라며 극구 말리셨다. 다행히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이신 한창기 선생님 밑에서 출판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출판계에선 많은 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면 내용의 수준을 중졸 정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퍼져 있었다. 그러한 시각을 완전히 바꾼 분이 바로 한창기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아무리 어려운 내용을 담는다 해도 정확하고 바르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초등학교를 나온 독자들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셨다. 그래서 태어난 게 바로〈뿌리 깊은 나무〉였다.

 

윤 대표는 〈뿌리 깊은 나무〉의 초대 편집장을 지내면서 이러한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여성지가 월 3만 5,000부 발행되던 시절, 결코 녹록지 않은 내용을 담은 〈뿌리 깊은 나무〉는 폐간 직전까지 8만 8,000부를 찍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문화에 관한 격조 있는 글들 역시 충분히 대중들에게 읽힐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같은 성공이 ‘교양지가 이렇게 만들면 망한다’는 *16가지 금기를 모두 깨뜨리고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이다. 즉 좋은 책을 만들면 그것을 알아보는 독자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보리출판사가 아동 출판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혀 새로운 기준과 방향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않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는’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과연 이것은 무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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