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생불멸의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한다
Book I. Myth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장영란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장영란 교수에게서 그리스·로마신화를 듣는 내내,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Athene)의 손에 이끌려 올림포스 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듯했다. 신 같은 사람, 사람 같은 신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다 보니, 내 안의 본성이 신성처럼 느껴졌다. 수천 년 전 신화 이야기와 2011년의 신화 이야기를 동시에 듣자 급기야는 몇천 년의 세월을 달리하는 두 개의 이야기가 데칼코마니처럼 한데 포개져 지금이 고대 그리스인지, 21세기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중 애플의 심벌 이야기는 진실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로 믿어졌다. 신화에서 그 근원을 찾아 상징적 의미를 해석해 나가는데, 나의 맥북에서 반짝이는 사과가 에리스의 황금사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신화인데, 그것은 어느새 완벽한 진실이 되어 있었다. “포세이돈이 나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에게 말을 주었지. 이번에는 무엇을 준비했나 봤더니,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전쟁을 선포했더군. 내 정원에서 올리브 나무를 모두 뽑아 거기에 사과를 심고는 그 지혜를 사람들에게 주고 있단 말이야.” (이처럼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장영란 교수의 말투는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가 얘기하는 듯 들렸다.) 여신 니케는 브랜드 나이키로 환생했고, 에리스는 여전히 우리들 중에 누가 더 지혜로운지를 확인하기 위해 애플을 던진다. 그 옛날 에르메스는 우리를 하데스로 안내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매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신화가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가 신화가 되는 현재의 시장에서 브랜드와 신들의 이종교배가 시작되었다.

신화, 세상을 이해하는 원리
Q
유니타스브랜드의 창간 특집이 ‘판타지 브랜딩’이었는데요, 특집기사 중의 하나가 UB‘백화점은 신들의 놀이터다 - 신들의 박물관’이라는 거였어요.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에르메스를 시작으로, 제우스, 헤라, 미네르바 등 신화에서 그 이름을 따온 브랜드들이 너무나 많기에 거기서 모티브를 따온 거죠. 이처럼 브랜드는 끊임없이 신화로부터 수혈을 받아 이른바 ‘브랜드의 신화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 인터뷰 내용은 브랜드가 왜 자꾸 신화를 탐할까가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먼저 신화의 정의부터 묻고 싶습니다. 사실 신화라는 말이 다양하게 사용되다 보니 그 본래 뜻이 퇴색된 것 같습니다.

 

A
신화는 문자 그대로 이야기하면 ‘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어로 ‘신’은 ‘테오스(theos)’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는 형용사인 ‘테이오스(theios)’에서 파생된 단어예요. 그런데 이 ‘테이오스’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해 보면 ‘놀랍다’ ‘경이롭다’로 뜻풀이를 할 수 있는데요, 정리해 보면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놀라움’을 안겨다 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바로 이 ‘놀라움’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알고 있다시피 서구에서 신화와 철학의 출발지는 그리스잖아요.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신은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신은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였기 때문이에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끊임없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놀라워했어요.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다시 피어나는 들꽃과 풀 한 포기 같은 자연의 현상조차 그들에게는 모두 놀라움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이 놀라운 자연적 대상과 현상들을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어요. 바로, 신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화의 시작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신들의 세계에서 찾은 거죠. 물론 이 ‘놀라움’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무언가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능한 원인을 찾고자 했죠.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은 놀라움에서 시작된다(Philosophy begins with wonder)”라고 말했죠. 그러나 같은 놀라움에서 출발하더라도 신화와는 다르게 철학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 도대체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자연의 이 기이한 현상들을 어떻게든 규명해 보려고 한 겁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신화와 철학은 똑같이 ‘놀라움’에서 출발한 거예요. 다만,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죠. 예를 들어, ‘왜 번개가 칠까?’ 하는 질문에 신화는 ‘제우스가 화가 나서 번개를 쳤다’고 하는가 하면, 철학에서는 ‘구름이 부딪쳐서 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또 ‘지진은 왜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하면 신화에서는 ‘바다를 뒤흔드는 포세이돈 때문이다’고 말하며, 철학에서는 ‘대지는 물에 떠 있기 때문에 물의 파장이 진동할 때 대지가 흔들려 생긴다’고 설명했죠. 이처럼 같은 질문에 대해 신화는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그 해답을 찾았고, 철학은 그것이 맞고 틀림은 일단 제쳐두고, 어쨌든 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게끔 밝혀 내려고 한 겁니다. 그래서 ‘테이오스’라는 놀라움에서 동시에 출발한 신화와 철학은 시간이 흐르면서 신화는 이야기라는 뜻인 ‘미토스(mythos)’로 가지를 쳐 가고, 철학은 ‘로고스(logos)’라는 이성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거지요. 그런데 *기업에서는 ‘창조 신화’라든가 혹은 어떤 사람을 빗대어, 예를 들면 ‘박정희 신화’ 이런 말을 하잖아요. 이것은 신화가 ‘놀라움’이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왔기 때문에 거기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죠. 왜냐면, 기업이 창조되었다든가, 위대한 사람들의 행적은 그 원인을 알 수 없잖아요. 아주 놀랍죠. 그래서 ‘신화’가 가지고 있는 ‘놀라움’이라는 뜻을 빌려 와 쓰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서 제가 말하는 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로마신화를 말하는 겁니다.

 

Q
신화와 철학은 모두 ‘놀라움’, 그러니까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만났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군요. 그렇다면 미토스(mythos)와 로고스(logos)로 각각 뻗어 나간 신화와 철학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신화는 미토스, 그러니까 이야기이기에 예술로 발전해 나갔어요. 특히 문학으로 가장 많이 발전해 갔죠. 너무나도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는 그리스·로마신화의 가장 오래된 텍스트죠. 그런데 신화는 *그리스 비극에서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비극이 대단한 유행이었거든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라 불리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주요 작품들은 모두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삼고 있죠. 이처럼 당시 비극의 90%가 모두 신화 이야기가 그 줄거리였어요. 그래서 신화의 주인공들은 비극의 영웅들로 다시 태어났죠. 그런가 하면 철학은 신화의 내용을 인용하되, 그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더욱더 논리적으로 완성되어 가죠. 예를 들어 플라톤은 호메로스와 그 작품들을 비판하며 자신의 논의를 풀어 갑니다. 그래서 신화의 내용을 차용하되, 그것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했죠. 결국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신화나 철학은 전혀 다른 학문이 아닌 각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대의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철학을 함께 공부하면 어떤 개념이 이쪽에서는 어떻게 설명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어떻게 설명되었는지 비교하며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죽음’이 신화에서는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보고 나서 플라톤 철학에서는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본다면 ‘죽음’에 대해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화와 철학은 그리스를 너머 전 유럽으로 확산되요. 이처럼 신화의 텍스트들 이 몇백 년에 걸쳐 문학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또 철학으로 연구되면서 그것이 *서구 정신의 뿌리로 자리 잡히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를 읽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그렇다면 왜 신화가 이렇게 시대마다 그야말로 부름 받는 존재가 됐을까’입니다. 칼 융은 신화에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원형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신화에서 그 원형들을 꺼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신화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얘기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들은 바로 인간 정신의 보편성을 가진 것들이기에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신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시대와 공간을 모두 초월해서 인간정신의 보편적인 것, 그러니까 원형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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