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에너지원, 신화
Book I. Myth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정재서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요즘 우리는 인간 정체성의 위협을 받고 있지. 사이보그 인간도 나올 수 있고, 유전자 조작으로 짐승에 가까운 인간도 만들 수 있어.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미래를 맞이할 거야.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 이런 시점에서 신화는 우리의 본질을 생각하게 해주지. 인문학적으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해준단 말야.” 이 대사는 해리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학교의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의 대사가 아니다.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조금 각색한 것이다. 그러나 이화여대 인문관에 마련된 정 교수의 방에 들어가면 정말 호그와트에 있는 덤블도어 교수의 비밀스런 방에 들어왔다는 착각이 든다. 대부분의 교수 연구실은 좌우로 책장이 놓여 있지만, 이 방은 공간도 다소 좁은데다 그 좁은 방의 정 중앙에 책장이 놓여 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미로의 시작 부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 교수의 책상까지는 한 번의 우회전과 또 한 번의 좌회전이 필요했다. 회의용 책상은 없었고 정 교수가 홀로 쓰는 책상과 의자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 방은 7층으로 이루어진 인문관의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했기에 마치 마법학교 옥상에 와 있는 듯했다. 주변에 책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한자와 상형문자가 빼곡히 새겨진 빛바랜 누런 책들, 그리고 원시 시대 동굴 벽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책상 위에 있는 수정체 조명은 이 방의 신비감을 더욱 고취시켰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그날따라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작은 유리창에서 흘러 나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아주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인어 아가씨가 아닌 인어 아저씨 이야기,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우주가 되었다는 반고의 이야기 등 꿈에서나 들을 수 있는 신비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렇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꿈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제우스를 꿈꾼 적이 없지만 인터뷰 중에 나온 희한한 등장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진짜 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신화, 상상력의 처음과 끝
Q
오늘 인터뷰의 주제를 한 줄로 정한다면 ‘우리도 영화 아바타를 만들 수 있을?’가 아닐까합니다. 아바타라는 영화에는 수많은 신화와 상징이 있다고 하더군요. BC 5000년경에 존재했던 수메르의 창조 신화, 수천 년 전의 인도 신화, 그리고 500년 전의 이야기인 포카혼타스 등 여러 나라의 신화가 이 영화 안에 녹아져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신비로움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아바타는 기술적으로 놀라운 영화일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는 문화, 세계관, 원형, 욕구에 관한 모든 것이 결합되어 있죠. 이처럼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상상해 낸 신화는 디지털 문화로 충만한 21세기 사람들에 의해 3D 기술로 재탄생되고 있습니다. 경외스러울 정도의 대자연의 신비감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입체적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고, 상상력의 끝이 어디일까를 의심케 할 정도의 풍부한 스토리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처럼 고대의 신화가 문화산업이라는 바람을 타고 첨단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에 재등장하는 것에 대해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A
영화 ‘반지의 제왕’은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죠. 그런가 하면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조앤 K. 롤링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해리포터’는 *서양의 중세 마법 이야기가 소재가 된 것이며, 일본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동양의 전통 신화에서 나오는 요괴 캐릭터를 각색한 것입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왜 영화, 더 나아가서 문화산업은 이토록 신화에서 이야깃 거리를 불러오는 것일까요? 문화가 이익 창출의 소재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굉장한 효용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바로 영화 ‘쥬라기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이 영화 한 편이 벌어들인 수입이 그 해 우리나라가 자동차 판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과 같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거죠. 영화를 비롯하여 애니메이션, 게임 등은 이제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산업으로 자리 잡았지요. 앞으로 문화산업이 생명과학 등과 함께 국가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예측이 아니라 기정사실이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문화산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군이 될 거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바로 컨텐츠입니다.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한 시스템, 그러니까 하드웨어도 너무나 중요하긴 하나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놀라운 컨텐츠를 가지고 있느냐가 당락을 결정하는 겁니다. 컨텐츠가 무엇입니까. 바로 스토리죠. 문화산업에서 현재 신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이 UB스토리 때문입니다. 신화에는 상상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놀랍고도 매력적이며 또 신비로움을 가진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스·로마신화야 워낙 유명하지만, 아직 발굴을 기다리는 신화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부터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 등으로 관심이 옮겨지면서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화는 더욱 더 문화산업을 통해 끊임없이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브랜드에서 신화를 연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뭡니까?

 

Q
스타벅스의 심볼은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사이렌 여신입니다. 그리고 캐논의 카메라 렌즈는 EOS, 이것 또한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이죠. 그런가 하면 컨버스라는 신발 브랜드를 수입하여 운영하는 회사의 이름은 반고 인터내셔널인데, 이때 ‘*반고’는 중국의 창조 신화에 나오는 신의 아들입니다. 기업이나 브랜드는 이처럼 끊임없이 UB신화의 캐릭터를 가져와 접붙이기를 합니다. 왜냐면, 차별화가 생명인 브랜드 시장에서 단순히 품질을 소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혹은 그것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신화의 캐릭터를 빌려 와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이것만큼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와 신화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늘 함께 다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신화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지는 의문입니다.

 

A
어쩔 수 없이 신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 때문이에요. 지금은 우리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화의 이야기가 너무 황당무계하고 엉터리 같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신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그러니까 까마득한 그 옛날에 살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인 거였어요.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원시인들의 삶은 오늘 사냥을 못 하면 굶고, 병이 나면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신화를 탄생했다면 여기에는 굉장히 현실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절박함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정리해보면 개체유지와 종족보존으로 압축됩니다. 개체유지는 식욕이고, 종족보존은 성에 대한 욕망과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 거죠.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원시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을 겁니다. 이러한 이해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사유 방식을 통해 표현한 것이 바로 신화입니다. 그러니까 원시인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과 세계를 대면하면서 그 속에서 생겨나는 기본적인 욕망과 함께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했는지를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신화라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 발가숭이로 있을 때 했던 생각이 신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신화에는 UB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질, 원판이에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혹은 환경에 따라 인간은 달라지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원형이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마치 유전인자처럼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어요. 다만 시대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날 뿐입니다. 원형은 절대로 변하지도, 또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가지고 있는 제1기능이자,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사이보그 인간이 등장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복제인간도 출현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대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죠. 이런 시점에서 신화는 우리의 본질을 생각하게 해주는 원본이 됩니다. 그래서 앞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에서도, 또 브랜드에서도 끊임없이 신화를 들춰 보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처음에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가 신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본질을 알고 싶은 반사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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