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초월하지 않는 창조 경영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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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상근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에디터가 1차로 인터뷰를 한 뒤, 나와의 두 번째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김상근 교수의 비서와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나 비서 분으로부터 오는 대답은 “시간이 없습니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뷰 약속을 드디어 잡았다면서 에디터가 나에게 알림 메일을 보내왔다. 겨우 약속을 잡았다는 환호성과 함께 가장 마지막 줄에 써 있는 문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40분 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십니다.” 40분. 이 시간 동안 과연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거라 사실 초반의 30분은 탐색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핵심적인 질문이라기 보다는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통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등을 관찰하며, 사전에 준비한 질문들을 재편집하여 인터뷰이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질문을 만드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40분. 탐색전은 사치에 가깝고, 무언가를 알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김 교수가 지정한 날은 오전부터 그야말로 줄줄이 미팅이 연속되는 날이었다. ‘만나는 데 의의를 두자’라는 그 누구의 다짐을 내 다짐을 삼고 김 교수가 있는 광화문의 플라톤 아카데미 사무실로 향했다.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 미켈란젤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누구나 아는 이 세 가지의 개념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책을 통해 여러 사람에 걸쳐 얘기되고 또 얘기되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야기와 그 중심에 있었던 메디치 가문,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천재적인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2010년을 살아가는 김 교수에 의해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재탄생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다음 연구 주제가 마키아벨리에요. 다음 주에는 이탈리아에 갈 거예요.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인터뷰 말미에 그가 한 말을 듣고서, 그가 어떻게 마법을 부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40분’이라는 시간밖에 나에게 할애해 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몇 가지 자료를 받기 위해 김 교수에게 다시 연락했을 때 그는 이탈리아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기업에서 몇천 년 전의 르네상스를 다시 꺼내보고,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베이커는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여지며,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날마다 새롭게 탄생된다. 브랜드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는 왜 창조적이지 않은가?
Q
요즘 UB창조 경영과 인문 경영이라는 말이 경영에서는 가장 뜨거운 이슈입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인문학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마치 ‘인문학만이 답이다’고 할 정도로 인문학 배우기에 열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문학의 붐에 대해서 인문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혹시 경영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 것이라고 예상하셨나요?

 

A
사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이 뭔가 필연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우연성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우연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우연성이 시대적 관심사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표면적으로 돌출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경영이니, 인문 경영이니 하는 사건들이 어떻게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일단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스티브 잡스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처참하게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는 기적처럼 부활해서는 과거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을 벌이죠. 결국에는 세계를 놀라게 할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룹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하죠. “나의 성공 비결은 창조성”이며, *“애플은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교차로에 있다”고 말입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다름 아닌 삼성의 ‘창조 경영’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1위 기업에서 ‘창조 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지니까, 1위 기업을 넘보며 뒤쫓던 다른 기업들도 창조성이라는 것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안팎으로 인문학과 창조성을 얘기하는 두 개의 큰 사건이 터질 당시 우리나라는 글로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때였어요. 그 전까지 우리나라의 문화는 그야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나라였죠. 선진국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40시간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55시간이나 되었으니까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미덕이라 여기면서 글로벌 시장을 향해 발을 내딛었는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죠. 선진국들은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아 보이는데, 우리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 것을 보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거죠.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이 우연적으로 발생하자, 우리나라는 현재 창조 경영 혹은 인문 경영이라는 열풍이 불게 된 거죠. 그런데 제가 질문을 앞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절대 창조적이지 않아요.

 

Q
한국 사람들이 창조적이지 않다는 말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뉴스나 신문에서 우리 민족의 소위, 장점을 말할 때 창조적이다, 혹은 창의적이다, 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지 않습니까. 사실 독자들의 경우 창조성은 생명과도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어떤 이유에서 한국 사람들은 창조적이지 않은 건가요?

 

A
제가 이집트를 여행할 때의 일이에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뭔가가 가물가물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낙타에서 내려 유심히 봤지요. 다름 아닌 모슬렘Moslem이더군요. 그는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는 말입니다. 왜, 모슬렘들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해야하는 이슬람의 법도가 있잖아요. 그것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한번은 그리스에서 기차를 탔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갑자기 기도를 하더군요. 얼마 동안 살펴보았죠. 알고 보니 그리스는 길가에 작은 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에 인형이 놓여 있어요. 그 성전이 나타날 때마다 이 아주머니가 기도를 하는 거더라구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바로 여기에 창조성의 비밀이 있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 하는 거죠. 그래서 ‘Creator’의 뜻은 ‘신’이며, 인간은 ‘Creature’ 즉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의 영역에 있던 창조적 행위가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인간이 이러한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월적 사고’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초월적 사고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외에 그것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초월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죠. 창조를 흔히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렇다면 ‘무(無)’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인 이와타 요시하루 교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창조라고 하지만, 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정의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죠. 어쨌든 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렇기에 창조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초월적 사고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겁니다. 제가 예로 든 모슬렘이나, 그리스정교인들은 바로 초월적 사고가 삶이 된 사람들이에요. 이것은 단순히 종교를 가지고 있다, 없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초월적 사고가 무엇인지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를 얘기하는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가요. 한국인들은 교회, 성당, 절에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종교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아닙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현실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한 민족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물욕적이기까지 하죠. 이것은 이미 많은 종교학자들의 논문을 통해 이야기된 바 있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초월적 사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창조적이지 않다라기보다는 창조적일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중세 봉건 시대에서 근대로, 그리고 현대를 거쳐 포스트모던이라는 오늘날의 사회를 맞이하잖아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시대를 중세로 얘기한다면 조선 후기에서 근대 시대로 넘어갈 준비를 할 때 일본의 침략을 받죠. 그리고는 한국전쟁까지 발발하며 아예 국가 자체가 초토화됩니다. 열심히 국가를 재건했더니, 어느새 포스트모던 시대가 되어 버렸죠. 결국 우리나라는 축지법을 쓴 것처럼 중세에서 포스트모던 시대로 껑충 뛰어 버렸어요. 몇 시대를 건너뛰어 버렸으니 사람이건, 사회건, 또 나라건 얼마나 정신이 없겠습니까. 흔히 우리나라를 일컬어 ‘*압축 성장’을 했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압축 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우리를 더더욱 초월적 사고로부터 멀어지게 한 겁니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초월이 아니라 바로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도로를 다시 닦고, 건물을 세우고, 집을 짓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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