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인간의 가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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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영수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교수 자리도 사임하고 오직 이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끼리 하던 위험한(?) 장난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중목욕탕에서 이뤄지던 것인데, 바로 탕 안에서 누가 오랫동안 잠수를 하느냐는 것이다. 다들 손으로 코를 막고는 일제히 탕 속에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물 밖으로 튀어오르는 친구들이 꼭 한 명씩은 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언제나 마지막까지 물 속에 있는 사람은 나였다. 생각해 보니 약 2분 정도 물속에서 버텼던 것 같다. 왜일까? 어린 나이의 치기였기도 했지만, 내가 대체 얼만큼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일종의 궁금함 같은 것도 있었다. 이러한 습관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져, 무언가에 그야말로 꽂히면 그 바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나의 과거사(?)를 이토록 길게 얘기한 이유는 바로 이같은 성격의 사람이 둘이나 더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한 번 맛본 공부에 대해 끝장을 보고자 안정된 직장까기 과감히 포기하고 중국길에 오른 김영수 작가와 궁형이라는 치명적인 형벌을 자처하면서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역사책으로 불리는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왕에게 잘못을 하여 사형과 궁형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궁형은 생식기를 잘라내는 치욕스런 형벌입니다. 당시만 해도 지식인들은 궁형을 택하느니 자결을 해버렸죠. 하지만 사마천이 궁형을 자처한 이유는 이 《사기》를 완성하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만약, 사마천이 궁형을 선택하지 않고 사형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지금 《사기》를 볼 수 있을까? 만약, 필 나이트가 일본까지 건너가 운동화를 수입해오는 집념을 보이지 않았다면 나이키는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만약,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맨발로 다니는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신발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았다면 탐스슈즈를 우리가 신고다닐 수 있었을까? 위대한 사건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기》에서 인간을 만나다
Q
경영자들이 듣는 인문학 강의들을 살펴보면 어떤 강좌든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마천의 《사기》입니다. 그만큼 이 《사기》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가 오늘날까지도 인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랫동안 《사기》를 연구하신 선생님은 《사기》에서 어떤 가치를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사마천의 초상화를 보면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당시 성인 남성의 초상화를 보면 모두가 얼굴에 수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어떤 초상화를 봐도 수염 한 점 없이 깨끗합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생식기를 잘라 내는 끔찍한 형벌인 궁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궁형을 당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사기》를 집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기》의 가치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가 다스리던 때에 황실의 전적을 관리하는 태사령이라는 벼슬에 있던 관리였죠. 그의 아버지였던 사마담이 본래 태사령이었으나, 아버지가 죽자 그가 이 자리에 오르게 된 겁니다. 그런데 사마담은 죽으면서 유언으로 자신이 생전에 쓰고 있던 중국의 역사서를 사마천에게 완성해 달라고 했어요.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태사령의 자리에서 황실 서고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역사서를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가 기원전 99년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건이 터집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장수였던 *이릉이 전쟁 중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포로를 자처한 겁니다. 당시 장수는 자결할지언정 절대 투항하면 안 되는 것이 장수의 법도였지요. 무제는 관료들을 불러 이릉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모두가 이릉을 능지처참할 것을 주장했지만, 사마천은 그와의 우정 때문에 이릉을 대신해 변론을 합니다. 이에 화가 난 무제가 사마천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죠. 당시에는 사형 선고를 받은 자가 그것을 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내거나 아니면 궁형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궁형은 사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말과 같은 거였죠. 당시는 지식인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되는 사회였기 때문이죠. 옥중에서 사마천은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대로 죽는 것은 또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하죠.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궁형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궁형을 당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사기》의 가치는 바로 이것입니다. UB목숨을 걸면서까지 《사기》를 집필하려고 했던 사마천의 역사적 사명 말입니다. 이러한 사명으로 인해 그로부터 56년 후, 사마천은 *본기 12편, 서 8권, 표 10권, 세가 30권, 열전 70권을 합해서 총 130권에 이르는 《사기》를 완성합니다. 130권에 담긴 글자 수만해도 자그마치 52만 6,500자에 이르는 역사서인 《사기》는 중국 여명기로부터 사마천이 살던 한나라 무제까지 무려, 3,000년의 중국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요. 《사기》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통사(通史)입니다.

 

 

Q
결국 《사기》의 가치는 사마천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까지 내놓으며 3000년이라는 중국의 역사를 완성시킨 것 그 자체가 가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여전히 놀랍습니다. 역사가라면 누구나 역사서를 내고 싶은 것이 꿈이기는 하겠지만, 궁형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서라도 《사기》를 끝까지 집필하려고 했던 사마천의 집념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니까요.

 

A
그렇죠. 궁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입니까. 그 상황이라면 대부분 자결을 선택하는데, 사마천은 부끄러움을 감수해서라도 《사기》를 써야하는 목적이 너무나 분명했던 겁니다. 사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기》는 그저 역사적인 일들을 나열한 책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날까지 《사기》가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결국, 사형선고는 그에게 삶의 의미를 재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당했다기보다는 원래 쓰려던 《사기》의 내용을 바꾸기 위해 궁형을 당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사기》를 완성한 후 그가 친구인 임안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초고를 다 쓰기도 전에 이런 화를 당했는데, 나의 작업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이 여긴 까닭에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습니다.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名山)에 보관하였다가 내 뜻을 알아 줄 사람에게 전하여 촌락과 도시에 유통되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만 번 주륙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죽음의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인간의 사상 그리고 행동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인간의 본성을 치밀하게 파헤칩니다. 그 결과 임안에게 쓴 편지의 내용처럼 《사기》는 지배층이 아니라 수많은 평민들에게까지 읽혀지는 책으로 거듭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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