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Paul Smith
episode 1 - 2014.12.29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19 브랜드의 미래 (2011년 02월 발행)

‘김철수’라는 브랜드는 동명이인 김철수들이 웹에서 연합해 생긴 매출 3조 규모의 창발성 브랜드다. 그 누구도 브랜드 김철수가 정확히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2011년 3월에 트위터에서 김철수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고 한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모두를 위한 하나, 그리고 하나를 위한 모두’를 위해 김철수가 김철수들과 함께 브랜드 김철수를 만듭니다. 김철수들은 모이십시오.” 하루 만에 서울에 사는 김철수 100명이 온라인 김철수 카페에 모이더니 일주일 동안 전국의 김철수 1,000명이 모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해외 교포를 포함한 3만 명의 김철수들이 모였다. 그렇게 김철수 브랜드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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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라는 브랜드는 동명이인 김철수들이 웹에서 연합해 생긴 매출 3조 규모의 창발성 브랜드다. 그 누구도 브랜드 김철수가 정확히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2011년 3월에 트위터에서 김철수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고 한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모두를 위한 하나, 그리고 하나를 위한 모두’를 위해 김철수가 김철수들과 함께
브랜드 김철수를 만듭니다. 김철수들은 모이십시오.”

 

하루 만에 서울에 사는 김철수 100명이 온라인 김철수 카페에 모이더니 일주일 동안 전국의 김철수 1,000명이 모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해외 교포를 포함한 3만 명의 김철수 들이 모였다. 그렇게 김철수 브랜드는 시작되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김철수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지만 60년대 생들에게는 반에서 한 명 정도‘철수’가 있었을 만큼 친숙한 이름이다. 철수라는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있다면 ‘안철수 연구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 그리고 ‘철수’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없었다.

 

김철수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었고, 대부분의 김철수도 지극히 평범했다. 그런 김철수들이, 영국의 김철수라고 봐도 좋을만큼 가장 흔한 이름과 성으로 조합된 폴 스미스(Paul Smith)라는 브랜드를 벤치마킹하여 브랜드 김철수를 만든 것이다. 김철수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연상 이미지는 ‘편안하다, 옆집 아저씨, 동화책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평범한 친구, 안심되는, 무리 없는, 색깔 없는, 서민적인, 엄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착한 아이, 내 친구 중 한 명이지만 존재감은 없는, 그리고 만만하고 친근하다’ 등이다. 김철수들은 ‘만만하고 친근하다’라는 컨셉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좋은 품질에 좋은 가격이라는 선한 브랜드의 궁극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금맥이었던 것이다.

 

브랜드 사업의 시작은 ‘김철수’라는 이름이 주는 자유 연상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략에서 시작됐다. 김철수라는 왠지 친절하고 평범하고 정직한 이름의 이미지로 시작한 사업은 바로 카센터였다. 프랜차이즈로 출발한 ‘김철수 카센터’는 불과 5개월 만에 전국에 500개의 매장으로 확산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지는 않았다. 김철수 3명이 자신의 카센터의 간판을 ‘김철수 Dream Car’로 바꾸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자동차를 가진 수백 명의 40대 김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김철수 Dream Car’로 가서 자신의 자동차를 수리한 것이다.

 

소문은 트위터로, 만족은 페이스북으로 전달되었고 그야말로 삽시간에 3개의 매장은 20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이 되었다. 곧이어 여러 명의 김철수들이 연합해서 ‘김철수 Dream Car’ 4, 5, 6호점을 내었고, 급기야 자신의 이름을 김철수로 개명하면서까지 프랜차이즈를 따내려는 사람도 등장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철수 자동차보험’이 나오면서 브랜드 인지도는 순식간에 급상승했다.

 

풍부한 투자 자금을 확보한 브랜드 ‘김철수’는 곧이어 자신의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밑천으로 브랜드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김철수 설렁탕’ ‘김철수 정식 밥상’ ‘철수 라면’ 등 식품 분야에서 약 20여 개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이는 외국인들이 관광을 오면 반드시 들르는 음식점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 1,000개의 매장으로 확산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라는 양복 브랜드, 속옷 브랜드, 청바지 브랜드가 차례로 런칭됐다. 급기야 휴대폰 회사와 공동으로 ‘철수폰’이라는 비즈니스 전문 스마트폰도 만들었다.

 

그중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는 유니클로와 무인양품과 같은 컨셉의 패션 브랜드로서 ‘Kim’s Kahn’이다. 이 브랜드는 가장 한국적인 컬러와 느낌을 살렸다는 평과 함께 드라마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과 아시아에서 매장 1,000개를 보유하고 무려 1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찍이 이런 현상에 대해 칭기즈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두 사람이 꿈을 꾸면 꿈이지만 우리 모두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패션 브랜드 ‘Kim’s Kahn’의 컨셉은 ‘김철수의 옷장에 있을 법한 옷들을 보여 준다’였다. 그래서 옷의 전시도 서랍칸과 짐칸에 들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1조 원의 매출을 보이는 김철수 브랜드에 대해서 아무도 ‘Kim’s Kahn’을 ‘김씨의 짐칸’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건을 적재하는 ‘공간’의 칸(Shelf)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군주의 의미인 칸(Khan)으로 이해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핵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인 칸kahn으로 알고 있다. 1칸은 1만 메가톤의 힘을 가진 핵물질 단위를 말한다. 1메가톤의 위력은 TNT 100만 톤이 한 번에 터지는 위력이므로 1칸이라는 것은 ‘일본’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핵폭탄을 말한다. ‘Kim’s Kahn’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만든 성공한 창발성 브랜드이므로 당연히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구글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약 20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받게 되면서 글로벌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2년 만에 일어났다. 물론 브랜드 김철수는 NIKE의 글자를 뒤집어 만든 NIKE의 안티 브랜드이자 창발 브랜드인 EKIN이 누리던 6개월 천하 같은 태풍 트렌드 와는 달랐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도 처음부터 대기업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문방구, 쌀가게, 동대문 옷가게, 설탕 판매, 목재 등을 팔던 작은 기업들이 수조 원의 대그룹이 된 것이다. 처음은 모두 ‘아저씨’에서 시작한 기업들이다. 브랜드 김철수도 처음에는 카센터의 ‘아저씨’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이웃을 위한’ 브랜드가 되면서 전 영역으로 확대해 가고 있는 중이다.

 

브랜드 김철수의 성공이 이어지던 어느 날 김철수 5명이 일주일 간격으로 연쇄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이 모두 김철수 브랜드 소속의 김철수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자 수많은 김철수들에게 김철수 자살 바이러스라는 괴소문과 함께 ‘철수의 저주’라는 괴담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공통적으로 손목에 자살흔이 없이 자살한 김철수들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착수되었다. 수사는 처음부터 김철수 브랜드 그룹에는 접근도 하지 못했다. 김철수 브랜드 관리 팀은 약 50여 명의 외국 및 국내 변호사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김철수 브랜드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브랜드 지적재산보호권이라는 이름 아래 조사 자체를 정치적으로 원천봉쇄 했기 때문이다. 수개월 서류만 돈 채 답보 상태였다.


하지만 재수사가 된 것은 어떤 김철수가 수십 명의 김철수에게 보낸 일종의 반성문에 해당하는 유서 때문이었다. 반성문은 간단했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서 브랜드 김철수에게 악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 메일을 받은 어떤 김철수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다시 김철수 연쇄자살 조사 팀인 작전명 ‘Smith 팀’으로 전해졌다.

 

5명의 스미스 팀은 연쇄살인 전문 과학수사원 두 명, 영화 투캅스를 연상시키는 두 명의 형사 그리고 한 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브랜드 김철수를 움직이는 실제 브랜더 김철수를 찾는 일이었다. 또한 브랜드 김철수를 관리하는 중앙 컴퓨터 Kim’s Box에 접속하여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로 김철수 브랜드의 최고 책임자가 5명의 연쇄자살에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믿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직관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자료에 의하면 자살한 5명 중 2명은 브랜드 김철수에게 상당한 액수의 금액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주주인지 아니면 조합원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영장 없이 진행된 불법 수사였고, 외부 전문가가 주도한 수사였기에 그들은 어떤 법적인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다. 단지 김철수 중에 누군가가 죽어서 수사가 자동으로 진행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독한 인내심 덕분에 스미스 팀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김철수 중에 누군가가 곧 자살할 것이라는 메일을 받은 것이다. 스미스 팀은 드디어 유력한 용의자 5명을 영장 없이 긴급 연행했다. 이런 무모한 결정도 역시 ‘외부 전문가’ 때문이었다.

 

외부 전문가인 박성민은 일명, 민간인이다. 그가 수사에 외부 전문가로 참여하게 된 것은 2009년에 만들어진 브랜드 안티떼제 멤버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티떼제란 헤겔의 변증법 논리에 등장하는 용어로 정.正에 해당하는 Thesis(떼제)에 모순되는 명제이며, 더 종합적인 합合인 Synthesis(신떼제)를 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박성민은 안티떼제 멤버로 특정 브랜드의 기술 및 브랜드의 진보를 예측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U라는 연구소를 만들어 특정 브랜드의 미래 상품을 예측하고 있었다.

 

블랙베리가 2000년도 초반에 나와 돌풍을 일으켰고, 애플은 2007년에 아이폰을 출시했다. 그러나 2010년, 애플의 스마트폰으로 인해서 강제적으로 모든 시장 구도가 바뀌게 되었다. 애플은 3년 동안 모든 콘텐츠를 쌓아놓고 마치 바둑판에 집어넣고 돌을 빼 가듯이 한국시장을 모두 가둔 상태에서 알맹이만 쏙 빼 갔다. 그래서 안티떼제팀은 애플의 미래상품에 대항하기 위해 구성된 애플의 거울 인간들이었다. 즉 이들은 스티브 잡스의 미래 예측을 읽기 위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들을 모아 짜여진 별도의 팀이었다. 하지만 이 팀은 누가 얼마나 후원하고, 또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테떼제 멤버들도 자신들이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누가 같은 팀인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U에는 두 팀이 있는데 하나가 안티떼제이고 또 하나는 합에 해당하는 신떼제 팀이다. 박성민은 이 안티떼제 멤버의 팀장 격으로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iPhone)차세대 기종이라고 하는 아이콘(iCon)을 간과하는 바람에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결국 안티떼제에서 물러나 지금은 홍대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이번 사건에 합류한 것은 수사관 친구인 차현식의 요청도 있었지만 김철수 브랜드에 대한 애착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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