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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주소 시즌2.5 / Vol.33 브랜드 경험 (2013년 10월 발행)

‘결혼’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다’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따로 없다.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정의해달라고 하면 오래된 부부일수록 난처한 얼굴로 ‘하루 안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할 것이다. 결혼은 ‘개념’이지만 결혼생활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험이란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정의할 수는 없는 단어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의 사전적 정의는 있지만‘브랜드 경영’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없다. ‘(결혼) 생활’과 ‘(브랜드) 경영’은 모두 경험의 산물이기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이번 특집이 어려웠던 이유는 이와 같이 정의할 수 없는 ‘브랜드’와 ‘경험’을 함께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 경험’이라는 말은 이미 많은 브랜드들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지혜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브랜드 경험(BX: Brand eXperience)이라는 단어의 기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 디지털 산업 현장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하지만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정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어떤 이들은 BX(브랜드 경험)라는 개념을 UX(사용자 경험)의 확장 혹은 또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BX와 UX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perience와 eXperience

‘결혼’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다’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따로 없다.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정의해달라고 하면 오래된 부부일수록 난처한 얼굴로 ‘하루 안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할 것이다. 결혼은 ‘개념’이지만 결혼생활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험이란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정의할 수는 없는 단어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의 사전적 정의는 있지만‘브랜드 경영’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없다. ‘(결혼) 생활’과 ‘(브랜드) 경영’은 모두 경험의 산물이기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이번 특집이 어려웠던 이유는 이와 같이 정의할 수 없는 ‘브랜드’와 ‘경험’을 함께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 경험’이라는 말은 이미 많은 브랜드들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지혜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브랜드 경험(BX: Brand eXperience)이라는 단어의 기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 디지털 산업 현장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하지만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정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어떤 이들은 BX(브랜드 경험)라는 개념을 UX(사용자 경험)의 확장 혹은 또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BX와 UX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UI(User Interface)란 사람과 시스템의 접점에서 사용자가 기계와 의사소통(기술)을 하는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뜻한다. 하지만 지금은 UX와 UI라는 단어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UX란 사용자가 제품, 기술, 서비스 그리고 기업의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가지게 되는 전체적인 경험이다. 앞서 말했던 UI의 기준이 사용성, 접근성, 편의성에 관한 설명이라면, UX란 UI의 이런 기능을 통해서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과 관계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UX는 상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UX는 생산자가 가상의 사용자를 상상하면서 만든 예측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생산자가 만든 과정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경험을 사용자가 하고 있다면 생산자는 상품에 대해서 자신이 모르는 것, 혹은 실수한 것으로 인해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소수의 사용자들이 누리는 특별한 경험을 단지 취향이 독특한 일부 계층에서 일어나는 한시적인 특이점이라 판단하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의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경험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산자만 모르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브랜드가 곧잘 출현하곤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경향이 트렌드처럼 전체 사용자에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가 전체 시장을 부정하며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상황이 되면 이는 차별화를 위한 일종의 코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자가 설계한 경험보다 더 큰 경험을 사용자가 요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산자가 예상하지 못한 사용자들의 경험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면, 이 경험 코드를 미리 읽어낸 경쟁자에 의한 시장 퇴출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최근 수많은 디지털 관련 신상품들이 생산자의 취향이나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마트폰 시장이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블루오션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던 닌텐도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지금도 수많은 회사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사들은 1997년의 ‘걸면 걸리는 걸리버’에서 ‘전국 광대역’으로 이어지는 광고를 통해 ‘잘 터지는 주파수와 핸드폰’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험이라고 굳게 믿으며 16년 이상 같은 경험을 강조해오고 있다.

 

강력한 경험을 맛보게 하는 브랜드는 나름의 독특한 경험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코드는 생산자가 의도한 경험을 모든 사용자가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특정 브랜드를 지칭하고 싶지 않기에) 어떤 에너지 음료의 경우, 경험의 강도 차이는 있어도 이를 마신 대부분의 사람이 용기와 열정, 최고가 되려는 도전 정신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같은 원료의 다른 에너지 음료는 피로회복을 위해서 마시는 설탕물 이상의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한다. 전자는 의도했던 브랜드 경험이 제대로 작동한 경우다. 하지만 후자는 단순히 혀가 음료의 미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두 번째 코드는 동일한 브랜드 경험 안에서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경우다. 애플과 할리데이비슨 같은 브랜드의 경우 얼핏 보면 많은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들어보면 마치 ‘결혼생활’처럼 그 범위가 매우 넓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브랜드 경험은 ‘설명’이 아니라 가히 ‘간증’ 수준이다. 이처럼 브랜드가 강력할수록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개인적인 친밀함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라며 폄하해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브랜드 경험을 일종의 문화라고 하기엔 친밀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다. 이런 경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문화의 패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믿음의 관계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BX를 ‘생산자가 설계한 브랜드 경험’ 정도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BX의 진짜 의미는 사용자와 브랜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경험이다. 여기서 말하는 브랜드는 생산자에 의해 만들어진(공장에서 제조된 상품과 상표) 브랜드가 아니다. 생산자의 손을 떠나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와 함께 누리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브랜드를 일컫는다. 실제로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만드는 힘은 생산자에 의해서 설계된 경험이 아닌, 브랜드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사용자와 사용자 간에 일어나는 특별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BX를 ‘생산자가 설계한 브랜드경험’ 정도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BX의 진짜 의미는 사용자와 브랜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경험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브랜드 경험에 관한 정의는 UX보다 더 혼란스럽다. 그 이유는 앞서 얘기했듯 ‘브랜드’가 먼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경험’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혹자는 브랜드를 상품이나 심볼, 로고, 스토리가 아닌 총체적인 경험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총체적인 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통합된 그 무엇’이라고 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무엇’을 생산자가 이해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A라는 브랜드에서 마니아를 직원으로 채용한 적이 있었다. A브랜드 경영자는 마니아로 구성된 신입 직원들이 기존 직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길 기대하며 채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모두 퇴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브랜드를 만들어온 경영자와 기존직원들의 태도에 분노했다. A브랜드를 사랑해온 그 동안의 감정이 기존 직원들에 의해 모욕을 당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A브랜드의 안티 카페를 만들어 브랜드 경영에 심각한 위기를 주기도 했다.

 

이는 어느 한 쪽의 잘못만은 아니다. 단지 브랜드 생산자가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 경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생산자의 브랜드 경험에 관한 이해가 이렇게 부족한 이유는 ‘브랜드 경험’의 기본 지식을 처음부터 잘못 쌓았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이다. 이제 브랜드 경험의 시작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ICMB, IMC, BX…?

브랜드 경험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통합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통합적커뮤니케이션 마케팅(IMC: 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과 브랜드 경험(BX)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는 마치 ‘Experience’와 ‘eXperience’를 구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이복형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쯤 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결혼한 부부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영자라면 브랜드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라 부른다고 해서 ‘좋은’ 브랜드가 되거나 ‘진짜’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는 모두가 브랜드라고 인정할 때만 비로소 브랜드가 된다. 마치 문화가 동시대 사람에게 동일한 경험을 주어야만 문화로 불리는 것처럼, 브랜드 역시 동시대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만 브랜드로 인정받을 수 있다.

 

‘브랜드 경험’이라는 개념은 학문적인 신조어가 아니라 분명히 시장에서 존재하고 작동하는 실제 ‘경험’이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단어 자체는 주관적인 해석을 하기 쉬우므로 ‘브랜드 경험이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경험이라는 한계에 빠지게 한다. 어떤 사람에게 컨버스란 브랜드는 아무 때나 신는 신발에 불과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와 함께 신는 일종의 징표이기도 하다. 컨버스가 주는 브랜드 경험은 이처럼 신발(기능)에서 징표(가치)까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11월 11일에 먹는 빼빼로와 2월 14일에 먹는 초콜릿이 그 날짜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주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번 특집에서 브랜드 경험(BX)에 대해 일방적인 정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통합적 커뮤니케이션 마케팅(IMC)에서 말하는 대중 미디어를 통한 ‘일방적이며 강요된 총체적 체험’의 관점으로도 다루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2000년대 초반까지 IMC를 추종하는 마케터들은 사용자를 타겟(Target)이라고 부르며, 브랜드를 마치 대륙간 탄도 미 사일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에 장착된 편익, 체험, 욕구를 자극하는 뇌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아침에 눈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두뇌에 자신의 브랜드를 직접 각인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이를 브랜드 체험 마케팅이라고 믿었다(아직도 통신 3사를 비롯한 대기업 브랜드에게는 IMC는 일종의 성배다). 그래서 이 당시의 모든 마케터들에게 흠모와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마케팅은 블록버스터(Blockbuster: 대형 폭탄)마케팅과 와해성 포지셔닝(DisruptivePositioning)이었다. 이때 마케팅 관련 베스트셀러와 현장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보면 군대의 전투 야전 교범과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다. 어떤 책이든 목차부터 ‘혁신’ ‘전략’‘벤치마킹’ ‘경쟁’ 그리고 ‘시장점유율’이라는 단어로 가득하다. 시장을 공격하고 경쟁해서 점령하는 것을 마치 투사들의 영웅적인 행동처럼 추앙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재래식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인터넷 시대 이후, IMC를 추종하는 마케터들에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브랜드를 블록버스터와 같은 핵 미사일 개념보다 최첨단 화학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학무기의 특징은 무색, 무취, 무미다. 화학무기는 이처럼 인간이 인지할 수 없기에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가 된다. 고객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하기도 전에 사용후기로 취하게 만드는 ‘스토리’ 마케팅, 가장 친한 사람에게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소개받는 ‘관계’ 마케팅 등 전투적인 마케터는 더 이상 미디어가 아닌 ‘공기(화학무기의특징)’를 통해서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 많이 나왔던 마케팅 용어가 바로 ‘문화 마케팅’이다.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을 저항할 수 없는 브랜드 중독코드를 통해서 붙잡아 둔다. 이때 IMC보다 세련되게 사용한 개념이 바로 이번 특집에서 다루게 될 브랜드 경험(BX)이다. 하지만 이번 특집에서는 재래식 마케팅의 관점이 바라보는 BX는 다루지 않는다. 지금은 그 지식이 없지만 미래의 시장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다룰 것이다.

 

 

체험과 경험

체험(體: 몸 체, 驗: 증험할 험)이라는 단어는 마케팅에서‘체험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사용됐다. 말 그대로 사용자가 브랜드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세가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잠재 사용자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대중 미디어의 힘에 의해서 ‘체험’ 당하고 있다. 그야말로 재래식 융단 폭격이다. 하지만 재래식 마케팅에서는 경험(經: 날 경, 驗: 증험할 험)과 체험을 구분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경험’은 어느 정도 보호받으면서 ‘브랜드 경험’을 주장하는 브랜드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브랜드 경험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이번 특집 구성은 이 ‘한 줄의 질문’에서 시작해 ‘책’이 되어 나왔다(말 그대로 Text(글)에서 시작해 Text(책)가 되었다). 먼저 우리는 브랜드 경험이라는 복잡한 실 뭉치에서 한 줄(String, Line)이라 할 수 있는 경험(經驗)의 경(經: 날 경)이라는 ‘단어’를 뽑아보았다.

 

경(經: 날 경)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이 단어는 약 30여 개의 뜻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경영하다’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자살’의 의미를 가진‘목을 매다’의 의미도 있다. 아마 이 단어가 이토록 많은 의미를 가진 이유는 한자가 아니라 외국 철학 용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經)으로 해석한 수트라(Sutra)는 산스크리트어로 ‘실,끈’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불교 이전의 종교였던 브라만교와 자이나교에서 사용되었다. ‘수트라’는 마치 우리나라 ‘거시기’처럼 일상적으로 모든 인도 철학에서 널리 사용하는 관용어인 셈이다.

 

고대의 책은 실로 수를 놓는 방식으로 쓰여졌기에 ‘실’은 옷뿐 아니라 책을 만드는데도 사용되었다. 오늘날 이 단어는‘아름다운 색깔과 무늬로 완성된 옷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조직 운영이라는 개념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어에서도 이와 유사한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Text: 글, 책, 문자)라는 단어는 텍스타일(Textile: 섬유, 직물, 방직)과 같이 라틴어인 Textus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 단어는 ‘글로 쓰다’와 ‘직조하다’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경(經: 날 경)과 텍스트(Text)라는 단어를 통해서 조금은 애매한 브랜드 경험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브랜드 경험의 목표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브랜드란 완벽한 옷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복을 입어본 사람이라면 몸에 꼭 맞는 옷, 마치 자신과 하나가 된 듯한 옷이 어떤 느낌과 경험을 주는지 안다. 그래서 브랜드가 줄 수 있는 궁극적인 경험은 바로 브랜드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 경험을‘사용자의 스토리가 모여서 브랜드의 히스토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브랜드 생산자와 사용자 경험은 날실이다. 그리고 사용자와 사용자 간의 브랜드 경험은 씨줄이다. 이런 날실과 씨줄이 직조되어 ‘브랜드 경험’, 즉 마치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브랜드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

 

나는 가격과 디자인이 똑같은 만년필 3개를 동시에 사용한다. 물론 같은 브랜드이고 펜촉도 똑같이 EF며 잉크도 같은 색을 사용한다. 하지만 용도는 다르다. 하나는 일기를 쓸 때,하나는 아이디어를 낼 때, 또 하나는 인터뷰를 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설명할 자신이 없다.단지 같은 만년필이지만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동일한 경험을 누리기 위해서 여전히 같지만 다른 만년필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진 브랜드 경험이다.

 

 

미래의 경험

브랜드 생산자가 만드는 경험은 과거의 경험인 추억이 아니다. 소망, 놀라움, 믿음 등으로 대변하는 미래의 경험이다. 자신도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경험 설계가 얼마나 어려운 지짤막한 경험담으로 시작하겠다.

 

UI와 UX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널리 사용된 연유는 우리주변에 다양한 전자 제품이 급격히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아주 특별한 전자제품에 대해서 상상해보자. 바로 ‘스위치가 없는 기계’다. 이것은 과연 어떤 기계일까?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을까? 확실한 것은, 기계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기계의 스위치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먼 미래에 기술의 발달로 모든 기계에 스위치가 없어졌다고 상상해보자. 이것이 과연 기계일까? 스위치가 없는 기계는 예전의 기계처럼 작동할까, 아니면 사람처럼 작동할까? 사람들은 스위치가 없는 기계를 기계라고 부를까?

 

자동차에 시동 스위치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기름을 사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노트북과 핸드폰에 전원 스위치가 없다는 것도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위치가 없다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 스위치 없는 기계의 출현에 대해서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이미 모두 보여주었기에 그렇게 놀랄만한 상상력은 아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스위치가 없는 기계에 대해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호기심보다 언제쯤 그것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기대감이 크다.

 

‘스위치가 없는 기계’를 왜 만들려고 할까? (스위치 없는 기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이 아티클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하겠다.) 도대체 이런 민머리 기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내비게이션, 터치스크린 그 외 음성인식 기능의 진앙이 군사과학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누가 이런 기계를 만들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어쩌면 미국의 사막에 위치한 군사보호 지역에서 ‘스위치 없는 전투용 기계’가 이미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는 몇 년 전 구로 디지털 단지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스위치 없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UI, UX 전문가들이 모여서 토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과 닮은 로봇은 아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를 상상했다. ‘도대체 이 기계는 어떤 프로세스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기계가 반응하고, 어떤 방법으로 인간과 소통하고, 어떤 형태로 기대하는 결괏값을 얻을 것이냐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창조주 관점에서 피조물의 자유의지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10년 후 자신들이 만든 이 기계를 손 안의 핸드폰이나 자동차 안의 내비게이션처럼 누구나 갖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래의 내용은 당시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기계가 도난당해서 분해될 위기에 놓이면 자동으로 폭발하는 건 어때요?”“사용자의 신체에 이상이 생기면 119에 자동 알림을 보내는 기능은 어떨까요? 이때 신체의 이상범위는 어느 정도로 한정하죠?”“기계의 소유자가 사망하면 모든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폐기할까요? 그런데 모든 자료가 함께 소멸하는 게 옳은 걸까요? 이런 정보 안락사는 가족 허락이 필요할까요?”“사람이 사망 시점에 이르면 지인들에게 자동 문자와 메일로 인사하고, 자신의 모든 SNS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개발합시다!”

 

상상 속의 기계는 전화통화는 기본이고, 인터넷, 건강 자동체크, SNS 관리를 모두 할 수 있다. 삼성, LG, 애플, 모토로라 혹은 구글에 납품할 기계가 아니었다. 이 기계는 장례를 대행하는 ‘상조 회사’에 제안할 ‘특별한 기계’였다.

 

100년 수명의 시대가 열렸고, 이에 따라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관련 데이터를 보관할 기계의 필요가 생겼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신제품에 관심이 많은 얼리아답터에 맞는 핸드폰을 선보인다. 이들은 보통 20~40대의 젊은이들이다. 이후 신제품에 관심이 비교적 적어지는 60대 이후의 사람들에겐 화려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핸드폰보다,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들이 최소 40년 동안 갖고 있을 ‘인공심장’과 같은 기계를 만들고자 했다.

 

추모 공원을 방문하면 납골함 옆에 고인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수첩, 신발, 옷, 만년필이 많았지만, 지금은 배터리가 없는 핸드폰이 가장 많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도 과연 핸드폰이 그 납골함 옆에 같이 놓일까? 아니면 다른 기계가 있을까? 다른 기계가 놓인다면 도대체 그 기계는 무엇일까? 우리의 상상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납골함 옆에 있을 정도라면 그것은 어떤 디자인일까?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어떤 기능으로 섬겼을까?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있으려면 인공 심장 박동기와 같은 인간에게 필요한 기능, 자연 친화적 재질 그리고 관계가 유지돼야 할 것이다. 물론 기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스위치도 없어야 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은 경험할 수 없지만, 반드시 경험하게 될 미래의 경험을 위해서 온갖 ‘상상 경험’을 하면서 기계를 그려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기계(브랜드)에 독특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서 ‘유대감’이라는 단어는 ‘교감’할 수 있는,
그러니깐 자유의지가 있는 주체들의 관계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스위치 없는 기계’의 정체는 사람이 사망하면 스스로 생전에 살면서 기록했던 모든 디지털 정보를 소멸하는 기계(프로그램)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와 동시에 예상되는 불쾌한 경험 때문에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다. 자연사가 아닌 타살과 자살일 경우에는 정보를 얼마 동안 보관해야 하는가? 이 규칙을 악용하면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가?이 기계(앱)를 진정 필요로 할 사람은 누구일까? 이 기계를 선물용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작동시킬 때 담당 의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누군가가 정상적인 사망 조건과 징후에 맞지 않는 신체 리듬을 보이며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자살 방지 모드’가 자동 실행되고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가야 하는가? 이 기계를 이용한 신종 사기나 보험 사기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도대체 이 프로그램의 작동 의지는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는 누군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끝나지 않는 선택사항들을 포스트잇에 써서 벽 가득히 붙였다.

 

처음에는 단지 사용자의 편의성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죽어가는 경험’을 하지 못한 회의 참석자들은 그 기계의 사용자 경험(UX)을 설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사망 이후에 벌어질 죽은 자 와 살아 있는 자들의 ‘경험’을 상상이 아닌 망상의 수준에서 논의했다. 결국 ‘늙어가고 죽어가는 자연의 섭리’를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는 적절한 기계를 설계할 수 없었고, 아이디어 회의는 SF 할리우드 호러 영화(?)로 끝이 났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망친 건 아니었다. 미래의 경험을 상상하면서 또 다른 미래와 앞으로 핸드폰이 가져야 할 미래경험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미래 경험으로 만들어진 슈퍼 핸드폰

상조회사 프로젝트명은 원래 ‘Forward(포워드, 앞으로, 진보하는)’를 줄인 FW였다. ‘FW’는 기계(프로그램)를 통해서 자신이 또 다른 자신(기계에 입력된 자신의 정보) 혹은 다른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 자신이 죽은 이후의 차세대 사람들과 관계 맺는 타임머신으로 생각했기에 붙여진 작전명이다. 내가 배운 건 미래의 경험을 알기 위해서는 진화적 관점이 아닌 돌연변이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떻게 내가 된 기계(혹은 프로그램)와 관계설정을 할 수 있을까?’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는 어떤 경험이 있어야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까?’ 해괴한 질문이지만, 그 당시에 기계가 된 또 다른 나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이었다.

 

결국 예상했던 것처럼 상조회사 프로젝트는 공중 분해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용자가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정리해서 자손들에게 전달해주는 ‘자전적(또 다른 나) 프로그램(기계)’을 원하고 있다는 미래의 경험(니즈)을 발견했다. 나는 FW의 의미를 Free Will(자유의지)이라는 컨셉으로 바꾸면서 미래의 경험을 이어나갔다.

 

[알려드립니다. 당신의 맥박과 땀의 분석을 해보니 당신은 생명은 이제 3개월 남았습니다. 이제부터 정리 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 완전 삭제 모드와 부분 삭제 모드를 결정하십시오. 연락할 사람을 분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변 병원과 관공서에도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건강자료는 예약한 A 병원 시스템으로 등록됩니다.]

 

이는 끔찍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계는 사용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기계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도대체 그것은 어떤 기계일까? 어떤 사람들은 기계(브랜드)에 독특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아이템은 자동차, 모터사이클, 자전거, 노트북, 가방, 카메라 그리고 핸드폰까지 다양하다. 여기서 ‘유대감’이라는 단어는 ‘교감’할 수 있는, 그러니깐 자유의지가 있는 주체들의 관계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애플은 이런 유대감이라는 단어를 iOS 7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기술은 사람다움에서 출발합니다. 제품이 제대로 디자인되었다면, 즉 이미 당신에게 딱 맞게 디자인되어 있어 적응하는데 별도의 노력이 필요 없는 상태라면, 그 제품과 당신 사이엔 유대감이 싹틉니다. 당신에게 단순한 기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죠. iOS 7은 이런 유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상호작용은 역동적이고 움직임은 스펙타클합니다. 그 모든 경험은 상상을 초월하면서도 더없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생함과 활력을 불러옵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대감은 상호작용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이것을 ‘관계의 경험’이라고 한다. 위 광고문구에서 애플은 사용자와 제품의 유대감을 상호작용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람은 기계의 기능과 작동을 기계의 반응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유의지를 가진 또 다른 객체로서 관계에서 오는 유대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이폰으로 메일을 읽고, 날씨를 확인하며 문자를 보내는 행위에서 ‘편의성’이 아닌 ‘사람다움’, 즉 익숙해지면서 친밀해지는 관계성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생각을 애플이 먼저 했을까?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이 서로 ‘연대’하면서 유대감을 느끼려는 이유는 그 자체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타자와의 일체감을 체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실존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행동을 낳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이다”라고 설파했다. 인간이 고립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합일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일체감에 대한 욕망은 어머니, 종족, 인종, 나라, 계층, 종교, 조직, 단체 등과의 공생적 유대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에리히 프롬은 애플의 아이폰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의 주장을 빌려 말하자면 애플은 유대감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다.

 

그런데 애플이 만든 전화기가 15년 전 집에 있던 검정 유선전화기였다면 지금의 유대감을 사용자가 경험할 수 있었을까? 만약에 애플이 냉장고, 빔프로젝터, 사진기 그리고 대형 TV를 만들었다면 그 기계 안에 이런 유대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대감의 핵심은 ‘이동성 휴대 전화기’라는 기계에 있다. 전화기는 인간의 관계를 잇고 있는 매우 인간적인(?) 기계다. 한마디로 전화는 인간과 기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을 돕는 기계다. 예전에 전화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계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사람과 같은 느낌(기술)이 들게 하는 또 다른 실체가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전화번호는 집 전화 개념이 아니라 개인 번호라는 아이덴티티의 변화를 몰고 왔다. 독자가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는 5천만 명 중 오직 독자만이 갖고 있다. 만약 여기에 국가 번호 ‘82’가 붙는다면 60억 명 중에 오직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가 된다. 즉, 지구 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다. 이런 개념이 핸드폰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핸드폰과 사용자 간에 일어나는 관계의 경험이란 바로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인지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기술이란 사람다움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 기술과 사용자간에 만들어지는 ‘우리다움’을 지향하게 된다. 바로 애플이 이런 특이점을 이해하고 있다.

 

사람다움에서 출발하는 기술은 2004년에 개봉한 SF영화인 ‘아이 로봇(I, Robot)’에서 소개했다. 핸드폰의 자유의지(Free Will) 컨셉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의 자유의지라고 말할 수 있는 ‘로봇 3원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 원칙은 영화가 상영되기 50년 전 과학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의 《아이 로봇 (1950)》에 쓰였던 것으로서, 앞으로 인간이 만들 기계의 원칙을 제시했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단, 제1원칙에 거스를 경우는 예외다. 제3원칙: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단, 제1원칙과 제2원칙에 거스를 경우는 예외다.

 

오늘날의 기술은 날마다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핸드폰, 자동차 그리고 컴퓨터가 있다. 이런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생산 원칙이 있을 것이다. 단가를 낮추고 제품의 질을 높이는 것은 공장과 기업의 원칙이다. 만약 자동차를 만드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빠르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원칙일까? 아니면 사람다움의 그 무엇으로 자동차다움을 만들어야 할까? 최근의 스마트폰은 혁명기에 있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핸드폰을 통해서 게임과 문자 보내는 것 외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만약에 스마트폰에 사람다움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기업이 만드는 제품에 생산원칙은 있지만 사용원칙은 없다. 판매 이유는 있지만, 존재 이유는 없다. 핸드폰의 판매 목표는 있지만, 핸드폰 자체가 가져야 할 원칙은 없다. 하지만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자유의지는 기계와 프로그램에 중독된 채 기계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에 자유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기계에 자발적으로 내어 맡기는 형국이 된 탓이다.

 

 

제품과 당신 사이엔 유대감이 싹튼다

가끔 UX 담당자들을 만나면 그들이 설계한 기계를 보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디서 우정을 느낄 수 있나요?”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자동차 브랜드 경험에 대해서 묻는 자동차 브랜드 매니저에게 “자동차는 Commodity의 품질이 아니라 Identity의 인격체로 느껴야 하며, 신기술에서는 우정을, 디테일한 기능에서는 배려를, 속도에서는 충성심을, 안전성에서는 신뢰감을, 고급스러움에서는 겸손함을, 주행 중에서는 하나됨을 그리고 가족과 함께 행복을 느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기괴한 표정을 지으면서 “예?”라고 되물었다.

 

사람이 기계에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브랜드와 기술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의 선이라고 한다면, 사용자가 유대감이라는 브랜드 경험을 갖도록 설계자가 어떤 태도로 브랜드와 제품을 설계해야 할까? 답은 ‘원칙’에 달려있다. 좀 더 설명하면 브랜드와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원칙이 있는 것처럼, 브랜드와 사용자 간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인간이 맺는 모든 관계의 경험은 원칙에 대한 헌신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를 들어, 허물없어 보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 존중해야 할 (도덕적) 원칙이 있고,이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지면 관계는 불편하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반면에 그 원칙에 헌신할 때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갖게 된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는 이처럼 원칙이 존재한다. 앞서 보았던 로봇 3원칙도 결국에는 인간과의 관계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관계의 원칙에 충실한 기계는 인간과 더불어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어떤 기계가 인간다운 그리고 인간관계에 들어오기 위해서 기술과 기능을 ‘인간미’와 ‘인간성’으로 변화시켰다면 ‘관계’라는 품질과 품격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은 많다. 그러나 경험이 없다.’ 예전부터 많이 들었던 마케팅 슬로건이다. 경험을 만들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체험과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브랜드 안에서 사용자가 누리는 ‘유대감’이라는 독특한 경험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디자인에서 ‘우정’과 ‘친밀함’을 느낄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 그 누군가는 이것을 믿고 실행 중에 있다.

 

 

사람이 기계에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브랜드와 기술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의 선이라고 한다면,
사용자가 유대감이라는 브랜드 경험을 갖도록
설계자가 어떤 태도로 브랜드와 제품을 설계해야 할까?
답은 ‘원칙’에 달려있다.

 

 

경험의 원칙

브랜드 경험에 관한 정의는 무엇일까? iOS 7을 총괄 지휘한 애플 디자인 책임자 조나단 아이브가 말하는 BX를 들어보자.

 

“아이폰이란 하나의 ‘경험’이라고 믿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이루는 하모니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인 거죠. 우리는 그 경험을 계속 다듬어 나갑니다. 과감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물면서 더 강력하게, 더 직관적으로, 궁극적으로는 더 유용하게 만들어갑니다. 친숙함과 새로운 느낌을 동시에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서 애플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조나단의 아이폰은 경험이라는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다.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을 이야기한 것처럼, 조나단도 하드웨어(기계)와 정신(소프트웨어)이 결합되어 허물어지는 그 무엇을 교차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경험의 궁극은 친숙함과 새로움이다. 공존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느낌이 바로 아이폰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다. 친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느낌은 아주 특별한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 이런 경험은 ‘절대 사랑’에서 이루어진다.예를 들어 이제 막 태어난 자녀를 생각해보자. 처음 만났지만 마치 수천 년 전에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 같은 운명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친숙함과 새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최고 경험이다. 조나단 아이브는 영상을 통해서 이것이 아이폰에 ‘진짜’ 있다는 믿음을 진실되게 전했다.

 

조나단 아이브의 눈은 그가 언급한 그 경험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경험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이폰은 스마트폰 중 하나지만 어떤 사람에게 아이폰은 조나단보다 더 감동적인 존재다. 이 모든 경험은 ‘설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관계’에서 나오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신형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해 이틀 동안 줄 선 사용자에게‘사용 후기’를 써보라고 하면 쉽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느낀 독특한 ‘경험’을 쓰라고 하면 뭐라고 쓸까? 대부분 사용 후기는 제원으로 시작해 기계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과 주관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하지만 조나단이 느낀 애플 경험과 동일한 경험을 가진 사용자에게 ‘사용 후기’가 아닌 ‘브랜드 경험’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라고 한다면, 아주 특별한 감정들을 쏟아낼 것이다. 다시 한 번 60년 전에 상상한 로봇3원칙을 살펴보자. 세 가지 모두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브랜드 관련 책에 자주 나오는 애플, 할리데이비슨,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는 독특한 관계의 경험이 있다. 이것은 특정 브랜드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60년 전에 상상한 로봇 3원칙 같은 관계설정 기준이다. 인간과 닮아가는 로봇의 진화 극점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듯, 브랜드도 브랜딩 극점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모든 관계의 경험을 설계할 수는 없지만, 설계된 관계의 경험은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BX의 시작이다.

 

스위치가 없는 기계, 이는 분명 사람과 닮은 로봇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스마트폰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안착된 후에 그야말로 새로운 디지털 쥐라기(Jurassic Period)를 맞고 있다. 핸드폰이 사람을 닮은 로봇은 아니지만 사람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매개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60년 전에는 인간을 닮은 기계로서의 로봇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간과 하나 된 로봇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핸드폰과 더불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핸드폰을 제외한 다른 상품을 만드는 브랜드 종사자들은 브랜드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어떤 BX를 설계해야 할까? 참고로 ‘경험’은 경쟁 브랜드가 도저히 카피할 수 없고 경쟁할 수 없는 최고의 ‘절대 우위 차별화 전략(이런 전투적인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이다. 앞으로는 브랜드가 사용자의 관계(편리성과 사용성의 체험이 아니다)를 통해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가 브랜드 업계의 주된 화두가 될 것이다. BX는 Brand의 Branding으로서 ‘관계’와 ‘경험’이다.

 

 

 

 

관계의 원칙

브랜드 경험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브랜드 아이텐티티(혹은 철학)인 디자인, 서비스, 품질, 기능 그리고 웹을 비롯한 모든 미디어를 총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틀린 정의도 아니고 맞는 정의도 아니다. 여러 정의중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마케팅·브랜드 관련 서적이 말하는 브랜드 경험은 사람들에게 뭔가(충성심, 호감, 인지도, 만족감)를 얻어내는 총체적인 방법과 결과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브랜드의 특별한 경험을 디즈니랜드에서 말하는 쇼 비즈니스의 세련된 기술 정도로 생각한다. 급기야 ‘브랜드의총체적인 느낌을 사람의 오감을 넘어 육감을 통해 전달하는 감동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BX는 아직 정의되지 않았고, 특정 브랜드에 의해서 그 신묘한(?) 범위가 계속 확대되는 중이다.

 

BX를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소비자, 타깃, 고객, 손님 그리고 사용자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된다. 이런 용어를 쓰면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물론 점잖게 ‘고객관리’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결국 목적은 관계가 아닌 매출이다. 관계는 설정(設定)이고, 설정은 인정(認定)에서 비롯한다. 소비자를 형제, 이웃, 애인, 동생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해보자. 지금부터 관계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브랜드와 접목시키도록 하겠다. 사람이란 존재는 진짜 돈을 원할까? 무인도에서 혼자 100조 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것이다. 사람은 관계가 무너지면 사실상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관계를 인간의 실체라고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은 사장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직원이라면, 사장과 직원은 그들의 실체일 것이다. 이 실체 안에 제3의 실체인 관계가 있다. 고용관계, 직급 체계, 경영 방법 등 이 실체 안에는 관계의 실체가 존재한다.

 

사람들의 관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기능, 수단, 도구, 협력이라는 목적의 관계다. 또 하나는 사랑, 우정, 믿음, 신뢰라고 불리는 완성의 관계다. 이 두 관계에서 BX를 경험할 수 있다.

 

관계는 친밀감에 의해 결정된다. 친밀한 관계의 최고치는 누구와 어떤 관계일까? 히브리어 중에 ‘알다(to know)’는 의미의 ‘야다(Yada)’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남녀 간의 동침(Sex)이라는 단어로도 사용한다. 남녀가 모든 것을 서로에게 맡기면서 하나가 되는 관계야말로 친밀도 면에서 최고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관계의 핵심은 ‘하나가 되려는 의지’다.

 

《관계》의 저자 탐 마샬은 인간 간의 관계를 세우는데(하나가 되려는 의지로) 사랑, 신뢰, 존중 그리고 이해의 네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관계를 가장 오래 지속하게 하고, 신뢰는 가장 깨어지기 쉬우며, 존중은 가장 소홀히 취급되기 쉽고, 이해는 가장 오래 걸린다고 한다.

 

브랜드 경험은 다양하다. 그럼 여러 관계 중에서 생산자와 사용자가 브랜드를 통해 누리는 최고의 경험은 무엇일까? 브랜드와 어떤 경험을 가져야 가장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사랑’이다. 하지만 BX 책임자가 이 관계를 인정한다면 난처하게 된다. 고객(소비자, 타겟, 사용자)과 완성의 관계를 누리지 못했거나 상상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알 수 없다. 만약 남자와 여자가 단지 아기를 낳기 위해 만난다면 이것은 어떤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브랜드로 돈만 벌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브랜드 경험은 일종의 브랜드 최면술이다. 가령 우리는 시장에서 ‘짝’하는 박수 소리에 홀리고 ‘속았지?’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뜬 경험이 있다.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던 브랜드에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면 시쳇말로 기분이 더러워진다. 브랜드 경험을 잘못 이해하면 충성고객에게 이런 더러운 기분을 안겨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특정 대상과 유대감을 느끼려고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그런 사람들의 본능에 노출되어 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은 브랜드라면 사람들도 소비자의 위치에서 그냥 소비만 하면 된다. 하지만 브랜드가 경험을 주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었는데 어설픈 행동으로 배신과 불신을 조장하면, 모든 관계는 깨어지고 소비자는 분노하게 된다.

 

따라서 BX 책임자는 자신의 브랜드 관계성을 이해하고, 브랜드와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친밀도를 줄 것인가. 혹은 기본 친밀도를 유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브랜드 사용자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BX 책임자는 자신의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 구축 및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브랜드를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관계의 진리는 상호적이다.

 

관계를 통한 여러 경험 중에는 첫눈에 반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깊은 관계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관계의 완성을 보여주는 부모와 부부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브랜드와 관계 맺고 그 안에서 개인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가지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 자체를 브랜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생산자는 브랜드를 만들 때 10년 나아가 50년, 100년 동안 이어질 관계의 경험을 생각하면서 브랜드를 구축해야만 한다.

 

우리나라 시장의 현실에서는 이런 낭만적인 주장이 망상가의 독백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용자를 친구와 이웃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 할애하여 관계의 경험을 주는 브랜딩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 내에 있는 대형 할인마트의 가격정책과 회전율, 백화점 매출을 위한 세일, 높은 건물 임대료, 브랜드를 만드는 인프라 구축과 지식인들의 결여, 속도전을 기반으로 한 경쟁시스템 등 브랜드가 사용자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경험을 쌓기에는 너무나 치열한 환경이다.

 

 

UX에서 UFO

UX와 BX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바로 UFO라는 단어를 억지로 만들었다. UFO 즉, User Feeling Obsession은 UX와 뭔가 다른 답을 구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든 용어다. Obsession은 ‘강박관념, 집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Obsidere는‘공격하다’에서 나온 것으로, 마음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생각으로부터 억눌린 상태를 말한다. 이 단어는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병적인 감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며, 사람, 관계, 사물, 대상에 관한 집착 상태에 많이 사용한다.

 

강박관념에 의해서 만든 브랜드와 경험을 누려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어떤 브랜드를 보면서 생산자의 강박관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는 브랜드와 대화하고 사람처럼 여기는 중증 소비자도 더러 있다. 또 어떤 브랜드 생산자 중에는 브랜드란 자신이 사물로 환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특이 현상에 대해서 소비자 행동 연구가인 러셀 벨크는 확장된 자아를 이루는 실체가 브랜드라고 주장한다. 소비자 연구를 많이 한 그의 말에 의하면 ‘소비자는 브랜드를 마치 살아 있는 대상의 인간적인 특성, 즉 성격을 가진 존재로 본다. 그리고 소비자는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아 획득을 경험하고 소유물을 자신의 일부로 간주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브랜드를 살아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강박관념의 시작이다. 특히 자신이 만든 것이 또 다른 자신이라는 생각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품과 브랜드에 대해 독특한 관계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무의식적인 강박관념으로 브랜드와 자신을 하나로 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전기 마지막 부분에 이런 고백을 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이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또 한 번 멈췄다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혹시 애플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살펴보자. 애플 제품은 스위치가 스위치처럼 보이지 않거나 일반적으로 스위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스티브 잡스는 죽을 때까지 스위치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졌다. 그는 스위치를 싫어하는 강박관념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좀 더 애플 제품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지금 만약 아이폰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사람처럼 느껴지는가?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는가? 사람처럼 생각했을 때 순간적인 느낌과 이미지(얼굴과 성격)를 연상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스마트 폰 중 하나처럼 느껴지는가? 그럼 책상주변에 있는 다른 제품들을 살펴보자.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가 깊은 브랜드일수록 사람에게서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BX 책임자는 자신의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 구축 및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브랜드를 완성하는 사람이다.
관계의 진리는 상호적이다.

 

 

자신의 아이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게놈 지도를 보면서 아이를 설계(?)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할까? 아마 생명 기간을 정할 것이다. 건강, 성격, 지능과 같은 개인 프로그램을 모두 세팅한 뒤에 마지막으로 남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제부터는 어려워진다. 누구와 만나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태어날 아이가 관계 맺을 상대방의 특성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하게 할까? 어떤 사람을 친구로 둘까? 기본적인 구성 세팅 후, 이 아이가 자라서 경험을 통해 처음 프로그램과 달리 변하게 될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브랜드로 가져와 보자.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가 브랜드를 만든다면, 그 브랜드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사람들은 독자의 브랜드를 통해 어떤 관계를 경험하게 될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독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야 할까?

 

관계를 통한 친밀한 경험은 1:1 관계일수록 더 깊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진다. 따라서 브랜드 설계자는 소비자와 타깃이라는 불특정다수의 개념으로 대하는 태도를 버리고 인격적으로 사용자를 대해야 한다. 브랜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브랜드 관계를 통한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강박관념이 필요하다.

 

 

스위치 없는 기계

세상의 기술은 상품을 통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공짜로 준다. 지금 스마트폰을 열면 폴더에 가득한 ‘지능적 관계 유지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그들이 나의 관계에 대해서 이토록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이 시대정신과 인류애에 기반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각 소비자의 관계 속에서 돈을 만들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기에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자가 인간의 사랑, 우정, 이해와 존경으로 헌신하며 공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 2,000원가량의 이모티콘을 제공하며 나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상품화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거리에 광고판이 세워지는 것처럼, 나의 관계도에 광고판들이 세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상품의 품질 그리고 그것의 완전체인 브랜드 제작 지식은 발달하고 있지만 진짜 관계를 통한 진짜 경험은 더 얇아지는 듯하다. 아쉬운 것은 우리가 브랜드를 통해 진짜 관계의 경험을 이해하기도 전에 이런 디지털 관계로 넘어가 그 깊이를 경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경험’한다.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경험은 관계다. 그렇다면 브랜드 생산자는 브랜드를 통해서 또 다른 인간과 어떤 관계를 누리고 싶을까? 지금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 혹은 (가게) 사장님과 (단골) 고객 정도의 관계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관계일까? 나는 사용자와 더 좋은 관계를 맺고, 그것을 통해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방법으로 BX를 소개하고 싶다.

 

제대로 된 관계의 경험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을 추가하기보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일이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은 과자, 광고가 없어진 잡지, 선정적인 이미지가 없는 인터넷 신문, 세일하지 않는 옷, 불필요한 기능이 잔뜩 붙은 전자기기들, 경쟁자와 시장점유율을 의식해서 잔뜩 껴입은 갑옷을 벗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본질을 생각해보자.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브랜드가 아닌 진짜 인간다운 브랜드를 만든다면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의 마켓을 움직이고 있는 브랜드는 현재의 위상과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답습할 것이다. 기대를 거는 것은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브랜드의 출현이다.

 

먼저 사용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상하고 과한 경험을 의도적으로 생산하지 말자. 사용자가 브랜드와 관계하면서 얻게 될 경험을 위해 무엇을 없애야 할지 적어보자. 친구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애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 동반자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는 것처럼 관계의 행복을 위해 사용자가 누릴 경험에서 브랜드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어보자.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경험’한다.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경험은 관계다.
그렇다면 브랜드 생산자는 브랜드를 통해서 또 다른 인간과 어떤 관계를 누리고 싶을까?
나는 사용자와 더 좋은 관계를 맺고,
그것을 통해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방법으로 BX를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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