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브랜드의 관계학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정재승  고유주소 시즌2 / Vol.22(하) Vol.22(하) 인문학적 브랜드 (2012년 01월 발행)

브랜드는 결국,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대한 상징기호라고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브랜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 아이덴티티를 정립하여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구찌라면 구찌다움을, 루이뷔통이라면 루이뷔통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브랜드에게는 가장 중요한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랜드 인문학은,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 학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관계’라는 새로운 화두가 열린 지금, 브랜드 인문학이라고 했을 때는 ‘브랜드 관계학’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브랜드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를 넘어, 나는 누구 사이에 서 있느냐,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고, 나는 누구와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느냐, 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나는 남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하는 거죠.

The interview with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정재승. 사실 그가 과학자라서 만나고 싶었다기보다는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만나고 싶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의 몸속 지도도 낱낱이 공개된 이 시대에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곳이 바로 뇌이기 때문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 과학자도 단 15%밖에 사용하지 못했다는 낭설까지 돌 정도로, 뇌는 그만큼 인간의 모든 호기심을 곤두서게 만든다. 왜일까? 뇌의 작동법만 안다면 사람의 사고구조, 행동원인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의 비밀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한꺼번에 모두 풀리기 때문이다. 여전히 뇌와 관련된 서적은 하루에도 몇 십 권씩 서점가를 두드리며, 살인자의 뇌는 이렇다느니, 천재들의 뇌는 이렇다느니 하며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쩔 수 없습니다. 뇌는 모든 정보가 모이는 종착역이거든요. 하지만 뇌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뇌는 원인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종착지에 몰려든 정보로 추측, 분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뇌 과학자가 아무리 ‘위험한 생각’이라고 해도 뇌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시들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브랜더에게는 말이다. 왜냐면 우리의 뇌에는 브랜드를 알아보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뇌는 하늘보다 넓어라/ 옆으로 펼치면 그 안에/
하늘이 쉬 들어오고/ 그 옆에 당신마저 안긴다//

 

뇌는 바다보다 깊어라/ 깊이 담그면 아주 푸르게/
그 속에 바다가 다/ 물통 속 스펀지처럼 담긴다//

 

뇌는 신(神)처럼 무거워라/ 무게를 나란히 달면/
다르다 해도/ 음절과 음성 차이 정도나 될까
- 에밀리 디킨슨

 

뇌, 브랜드를 알아보다
Q. 기아자동차에서 K5의 네이밍을 할 때, 실제로 교수님의 연구팀이 실험을 하셨잖습니까. 수십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보여 주었을 때 뇌와 눈의 반응에 따른 결과로 K5라는 이름이 탄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뉴로마케팅’이라는 것이 이제는 새롭지 않을 정도로 기업은 어느 연구소 못지않게 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뇌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먼저 묻고 싶군요.

 

A. 뇌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져 있던 거죠. 그런데 neuro plasticity, 그러니까 ‘가소성’이라는 것도 있어요. 이것은 자라면서 교육이나 경험, 문화 등 환경적으로 습득된 것을 통해 뇌가 많이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는 이 모든 것,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뇌를 자극하여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는 행위가 드러난 건데요. 우리가 뇌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렇게 생물학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이 인간의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이런 것이죠. 너는 생물학적으로 이렇게 타고났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고, 또 너는 이런 문화권에서 자랐고 부모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야, 라는 설명을 뇌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누구는 루이뷔통을 좋아하고, 누구는 에르메스를 선호하죠. 그러면 기업은 ‘왜’가 궁금할 것 아닙니까. 이것을 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아직까지 이것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뇌에 대한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하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뉴로마케팅을 비롯하여 기업이 뇌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는 당연한 거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뇌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건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뇌는 그저 생물학적이든, 환경적이든 이 모든 정보들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소위 ‘종착지’거든요. 결국엔 모든 정보가 뇌로 전부 모이기 때문에 뇌를 들여다보는 것이지, 뇌가 어떤 것의 원인이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뇌에 브랜드를 인지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Q. 소비자들이 어떤 브랜드를 어떤 이유 때문에 선택하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 듯 굉장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뇌에 브랜드를 인지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말씀은 더욱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원래부터 이러한 영역이 뇌에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브랜드를 인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 텐데요.

 

A. 예를 들어, ‘X’라는 것을 보면 누구나 금지의 느낌을 받는다거나, ‘O’를 보면 허용의 느낌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누가 가르쳐 줘서 아는 것이 아니잖아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뇌가 이 기호 뒤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 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곳이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이라는 곳인데요, 브랜드를 읽어내는 영역도 바로 여기입니다. 너무나도 흔한 코카콜라와 펩시의 맛을 비교하는 테스트가 있죠. 만약 어떤 것이 코카콜라와 펩시인지 알고 먹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카콜라가 더 맛있다고 얘기합니다. 왜일까요? 비밀은 이렇습니다. 펩시가 뇌의 쾌락 중추를 더 자극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이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인식하면, 이것은 쾌락 중추에게 ‘코카콜라가 더 맛있는 거야’라는 신호를 보내요. 결국 자신이 마시는 것이 코카콜라라고 인지하는 순간, 이 콜라가 더 맛있다고 소비자는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두 개의 콜라 중 어떤 맛이 우리의 혀를 더 만족시켰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뇌가 어떤 브랜드를 인식했는가가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거예요. 이처럼 O와 X, 그리고 브랜드의 문양과 같이 뇌는 상징적인 기호들의 의미를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원시시대는 지금과 같이 상징 기호들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이 수많은 상징기호를 다 읽어낼 수는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시대를 거쳐 오면서 이 부분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섬세해져서 이제는 복잡한 가치를 모두 읽어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이처럼 우리의 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브랜드를 인식하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만 년 전부터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에 코딩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브랜드라는 것이 언뜻 보면, 물질 문명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사용해오던 것이 자본주의 시대 버전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전두엽의 한 부분으로 대뇌의 앞쪽 안에 위치한다. 감성적인 의사결정과 사회 상호 작용, 위험과 보상의 정도를 파악하는 데에 관여한다고 생각되는 부위이며, 현재도 그 기능에 대해 활발히 연구 중이다.

 

Q. 교수님의 말씀대로, 코카콜라가 정말 맛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코카콜라’를 인지한 뇌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맛있다고 ‘착각’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이 모든 브랜드를 기억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코카콜라와 펩시 중, 코카콜라에 더 반응한다면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이 소위 영향력 있는 브랜드를 기억한다는 의미일 텐데요.
 

 

A.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뇌가 O나 X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또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인식하기까지는요? 관건은 바로 ‘지속성’입니다. 뇌가 어떤 브랜드를 인지하려면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브랜드가 뇌의 영역을 자극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 새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스토리’는 주목할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왜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뇌가 가장 잘 기억하는 형태 중 하나가 스토리이기 때문이에요. 왜, 나이가 들면 한 번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그저 맥락 없는 정보들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스토리는 왜 잘 기억하는 걸까요? 우리는 실제로 내가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거의 흡사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잖아요. 그 이유는 스토리에는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체 이야기 가운데 작은 실마리 하나만 쭉 끄집어 올리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던 나머지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져서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 스토리에는 ‘감정’이 코딩되어 있어요. 우리가 어떤 스토리를 듣거나 혹은 읽으면 이 사람은 잘못했다거나, 이것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거나, 이것은 믿을 만 하다거나 등의 감정을 느끼잖아요. 이러한 감정이 스토리에 그대로 코딩됩니다. 감정이 코딩되어 있는 스토리를 우리 뇌는 아주 잘 기억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스토리 때문에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된 브랜드들이 있죠. 단적인 예로 물 브랜드인 ‘에비앙’을 들 수 있겠네요. 일단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고 에비앙을 먹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앓던 질병이 나았다라는 스토리가 구축되면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잖아요. 정보는 사람을 일깨워 주지만,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거든요.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설득’입니다.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가 말하는 것의 핵심도 이것이죠. 스토리의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메시지가 된다는 것 말입니다. 이처럼 스토리와 같이 뇌가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어떤 자극이 있다면 뇌는 그 브랜드를 인지하게 됩니다.

 

브랜드는 관계다
Q.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한번 드려 보고 싶습니다. 뇌과학을 연구하시는 과학자 입장에서 정말 과학적인 브랜드구나, 하고 생각되는 브랜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이 브랜드는 뇌를 좀 아네’라고 여겨질 만큼 감탄했던 브랜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어느 하나를 딱 선정할 만한 수준은 안 되는 것 같고요. 그냥 경험적으로 보자면, 저는 코카콜라를 보며 대단한 회사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지난 10년간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100대 브랜드에 코카콜라가 8년 이상 1등을 했거든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코카콜라가 그 맛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지난 100년간 아무런 노력도 한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100년 전 맛이 사실은 더 훌륭했고, 더 변화를 주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죠. 그렇다면 지난 100년간 코카콜라가 한 일은 무엇일까요? 만약 외계인이 인간의 뇌를 관찰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온갖 방식으로 뇌가 사람마다 제각기 작동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코카콜라를 보여 주는 순간 모든 인간의 뇌가 똑같은 반응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사람들의 뇌의 한 영역에 코카콜라만 보면 즐겁도록(?) 만들어버리는, 정말 좋아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코딩해 두었다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그동안 코카콜라가 마케팅 비용으로 쓴 돈이 약 70억 달러인데, 전 세계 사람들의 뇌에 코카콜라를 코딩시키는 데 각 사람당 10달러씩 쓴 거라고 할 수 있죠. 아무튼 지난 100년간 아무런 기술적 진보도 없이 한낱 음료가, 소비자를 그 어떤 브랜드도 하지 못한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같은 로고와 소리만 들어도 똑같이 반응하도록 만들어 버렸죠. 그런 의미에서 코카콜라는 기호학인 거예요.

 

Q. 브랜드가 실제로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 몸이 브랜드를 읽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경영학에서 ‘브랜드’가 등장한 것은 이제 겨우 10년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브랜드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효과적인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연구될 것이 많은 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께서는 브랜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 궁금합니다.

 

A. 제가 함부로 정의할 수는 있는 게 아니지만, 과학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브랜드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키워드는 ‘관계’라고 생각되는군요. 과학은 무언가의 보편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잖아요. 다양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을 때, 그러니까 각각의 브랜드가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니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관계’라는 키워드가 보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브랜드가 중요할까요? 아니잖아요. 저라도 브랜드는 아예 관심 밖에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어떤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에서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관계가 브랜드를 소비하는데 굉장히 영향을 끼친다고도 얘기해 볼 수 있어요. 만약 어떤 사람이 볼보라는 자동차를 사러 갔다고 합시다. 딜러가 볼보는 지난 3년간 한국에서 교통사고가 몇 번 일어났는데, 그중에 사망사고가 0.9건이었다, 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볼보를 타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은 사람이 1년에 한 명이 안 된다고 한 거죠. 얼마나 신뢰가 갑니까. 그런데 함께 따라간 친구가 옆집 사는 아저씨가 볼보를 타다가 죽었는데, 하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평생 볼보를 사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아주 오랜 시간 통계적으로 얻은 결과보다 내가 아는 사람의 내밀한 경험이 내 의사결정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어디가 맛집이에요?’ 하고 지식인과 같은 사이트에 질문을 해서 객관적으로 검증된 10개의 리스트가 올라와도, 내 친구가 트위터로 알려 준 맛집을 더 신뢰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 브랜드로 돌아가 보면, 브랜드는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상징이라는 거죠. 그렇기에 관계라는 키워드를 통해 브랜드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브랜드가 ‘관계’라는 키워드와 떼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유니타스브랜드가 ‘슈퍼내추럴 코드’라는 특집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특정한 브랜드를 좋아하는 소위, 마니아 집단을 취재한 건데요. 이들을 만나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패션이나 취향이 모두 비슷했다는 거예요. 이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무엇보다 그 브랜드의 우수한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기꺼이 시간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더군요.
 

 

A. 맞습니다. 과거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상징되는, 그러니까 뭔가 정보의 권위자가 정교하게 써 내려간 그 정보에 사람들은 권위를 인정하며 가치를 부여했죠. 그런데 웹 2.0시대가 되면서 위키피디아로 상징되는 다수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공유하는 시대가 펼쳐졌어요. 이때부터는 권위자가 사라지고 대신 similar others, 그러니까 미적 취향, 정치적 의견, 세계관, 관심 등이 나와 유사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주는 정보가 가치 있는 정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가 그 관계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제 어떤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면 SNS를 통해 나의 팔로어들에게 물어 보면 됩니다. 팔로어들이 달아 놓은 멘션이야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죠. 사실 브랜드에게 있어 ‘감염’이라는 코드는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애플은 시쳇말로 ‘애플빠’라고 불리는 애플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마나 애플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시시때때로 간증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빠르게 전파되었거든요. 결국 나의 지인이 하는 간증을 통해 애플을 만나게 된 사람들은 그 전까지는 분명 애플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샌가애플의 다음 제품이 나올 때를 마치 메시아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지요. 이 전염의 네트워크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상황이니 ‘관계’라는 관점으로 브랜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바로 이 지점에서 ‘브랜드 인문학’이라고 했을 때 그 관점이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인문학, 브랜드 관계학
Q. 수백 년이 지나도 브랜드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바로 인문학이 그토록 오랫동안 연구해 오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녔을 때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인문학’이라고 했을 때는 뒤집어 보면 ‘인문학적 브랜드’야말로 영속가능한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를 목적으로 삼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선한 영향을 끼치는 브랜드가 인문학적 브랜드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브랜드 인문학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A. 거듭 말했지만 브랜드는 결국,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대한 상징기호라고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브랜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 아이덴티티를 정립하여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구찌라면 구찌다움을, 루이뷔통이라면 루이뷔통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브랜드에게는 가장 중요한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랜드 인문학은,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 학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관계’라는 새로운 화두가 열린 지금, 브랜드 인문학이라고 했을 때는 ‘브랜드 관계학’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브랜드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를 넘어, 나는 누구 사이에 서 있느냐,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고, 나는 누구와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느냐, 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나는 남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하는 거죠. 저는 이 관점에서 브랜드 인문학을 정립했을 때, 그것은 현재 기업에게 또 브랜드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화두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BRANDING ∩ LIBERAL ARTS
브랜드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는 사실은 유니타스브랜드 Vol.11 ‘온브랜딩’ 특집에서 깊이 있게 살폈다. 과거에는 브랜드를 만드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는 상품이라는 단 하나의 접점만 존재했으나 이제는 그 사이에 온라인을 통해 ‘네트워킹’된 또 다른 소비자, 소비자 모임, 온라인에서 생산된 콘텐츠, 여론, 또 다른 기업 등 너무 많은 접점들이 생겼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스토리로, 이미지로, 느낌과 감정으로 변해 그 자체가 특정 브랜드의 구성물이 된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매일 변화를 거듭한다. 구성물이 관계를 매일 재정립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24시간 항상 켜져 있는) 온ON브랜딩, (따뜻할) 온溫브랜딩의 시대가 된 것이다. 기업이 소비자들을 우리 브랜드에 붙잡아 두고
싶다면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CRM 분야에 투자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 관계의 본질을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 브랜드가 그 사이에서 고객에게 진정성을 가장 진솔하고 절절하게 느끼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관계를 결정짓는 인간성과 진심이 꾸며질 수 없는 것처럼 브랜드의 본성과 진정성도 포장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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