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 공감의 브랜드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강신익  고유주소 시즌2 / Vol.22(하) Vol.22(하) 인문학적 브랜드 (2012년 01월 발행)

‘이야기’라는 것은 공감을 만들어 주는 너무나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브랜드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만약 CEO들이 저에게 공감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고 조언을 구한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라’고 얘기해주겠어요. 1년 동안 회사를 시쳇말로 때려치우고 배낭 여행을 갔다 온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겠어요.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브랜드의 이야기가 되어, 소비자들의 마음에 공감뉴런을 활성화시킬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부터 그 브랜드를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The interview with 인제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강신익

 

소위 잘나가던 의사에서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학철학, 다시 말해 인문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의사가 아닌 ‘인문학자’가 되어 있었다. 인제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강신익 소장은 이러한 자신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한다. 오히려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을 도구로 알고 있죠. 그래서 인문학을 제대로 못 만나는 겁니다.” 그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 보자. “인문학은 ‘삶’과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인문학은 상아탑에 갇혀 삶과는 전혀 맥락이 없는 ‘데칸쇼’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이게 인문학인지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인문학이 도구가 되는 것 아닙니까?” 인문학은 ‘삶’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강 소장은 우리에게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브랜드 인문학이라, 브랜드에서도 인문학을 도구로 삼으려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에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브랜드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수를 세기 전에 강 소장이 말한 ‘삶과의 맥락’에서 인문학이 어디쯤 서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봐야 하는 것이 아마도 첫 번째 수순일 게다.

 

인문학, 위험한 세상을 꿈꾸다
Q. 인터뷰의 시작은 아마도 여기서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위 잘나가는 ‘의사’로 활동하다가 모든 것을 접고 의학철학, 그러니까 인문학을 공부하러 훌쩍 떠나셨습니다. 지금은 의사보다는 인문학자로 불리는데요. 의학에만 몰두하다가 인문학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소장님이 궁극적으로 얻게 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장님이 정의하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요?

 

A. 의사였을 때 시쳇말로 지금보다 돈도 몇 배 더 벌었죠. 경제적 삶의 수준으로 보자면 상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죠. ‘너는 왜 사니?’ 대답을 못하겠더라구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어요. 아마도 저뿐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왜 살까요?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죠.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엇인가에 떠밀려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갑니다. S대에 가기 위해,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 하기 위해, 넓은 아파트에서 살기 위해… 이것이 목표가 된 채 살아갑니다. 왜 이것을 얻어야 하는지 전혀 몰라요. 그러니 ‘반성’, 즉 되돌아보는 것은 있을 수가 없죠. 인문학이 뭐냐구요? 바로, 잠시 멈추어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바람의 딸’이라고 불리는 한비야 씨는 아예 인문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끊임없이 ‘나는 왜 살까?’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따라다니며 살지 않습니까. 그녀야말로 인문학자죠. 인문학이란 절대 데칸쇼, 그러니까 데카르트나 칸트, 쇼펜하우어를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저는 이런 진지
한 고민을 했고 지금은 의사 때보다 행복합니다. 그게 인문학을 통해 제가 얻게 된 거예요.

 

Q. 저희가 만난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부하더군요. 소크라테스 때부터 고민했던 인류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는 ‘왜 사는가?’에 대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브랜드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면서 ‘왜 이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은 브랜드는 소위 ‘지속성’을 넘어 ‘영속성’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거든요. 그렇다면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결정적인 혜택(?)은 ‘질문’인가요?

 

A.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현재를 ‘전복’시키는 질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당장은 아주 기발한 것이라 해도 언젠가는 ‘박제’되는 순간이 오잖아요. 멈춰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생각critical thinking이에요. 현재의 상태를 끊임없이 비딱하게 바라보는 겁니다. 물론 일부러 딴죽을 거는 것은 아니에요. 주어진 것을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박제되는 그 순간에 대안적인, 혹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져다주죠.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혜택은 현재를 전복시키는 질문이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인문학은 현재에 대한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문학은 언제나 당대의 시각으로 보면 위험한 세상을 꿈꾸죠. 하지만 결국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인해 시대는 새로운 가치를 만나게 됩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스티브 잡스 아닙니까? 그는 끊임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애플의 다양한 제품들이 선보이게 된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가 인문학적 사고가 애플의 성공 비밀이라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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