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역사, 인문학적 브랜드의 원형을 빚다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22(하) Vol.22(하) 인문학적 브랜드 (2012년 01월 발행)

시작은 여기서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Vol.22上 ‘브랜드 인문학’ 특집을 진행하면서 유니타스브랜드가 만났던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에 ‘브랜드’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거부감을 나타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겨우 인터뷰 자리를 얻게 되었다 하더라도, 인터뷰 중에 들었던 내용 중 더 보완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추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과 브랜드와의 만남이 내키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기도 했다. 왜 이들은 인문학과 브랜드를 나란히 부르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의 얘기를 빌어 설명하자면 “브랜드는 속으로는 자본, 그러니까 힘의 논리로 경영하면서 겉으로만 철학으로 경영”하기 때문이다. 300여 년 전 혁명을 통해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이른바 시민사회라는 것이 형성되면서 근대사회의 시작을 알릴 때, 알다시피 자본주의도 함께 등장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회의 질서 유지란 몫은 ‘신분’이었다. 하지만 혁명을 통해 신분 사회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사회의 질서는 자본이 넘겨받게 되었다. 자본주의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자본’으로 해석되는, 다시 말해 자본이 곧 철학이 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인문학자들이 예민해지는 부분이다. 이택광(경희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가치란 차별이 없는 거거든요. 다름이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었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모든 가치가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비싼 것이 아니라, 비싸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으로 둔갑해버렸잖아요. 결국 인문학자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기업이 인문학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비싼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도중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신발 하나를 사면 제3세계의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신발이 기부되는 탐스슈즈를 예로 들자, 인문학자들 중 열에 아홉은 “진짜예요?”라고 되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어떤 철학자는 “너희들(에디터)도 속고 있다. 그것도 마케팅일 뿐이다”라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언제부터 기업들은 이처럼 ‘신뢰’를 잃어버렸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다. “인문학적 브랜드는 무엇일까?”

인문학적 브랜드의 인문학적 컨셉

우리는 지난 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인문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의 답변이 묘하게도 한데 포개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중 몇 명의 답변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있는 가치를 표 방하는 브랜드이겠죠. 그러니까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간 본성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브랜드 말입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엄정식)
 
“인간과 공명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이해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하는 공명하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 합니다.” (성공회대학교 철학과 교수 신승환)
 
“시대와 공간을 모두 초월하여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원형을 찾고, 연구 하는 브랜드라면 다른 브랜드와 분명 다르겠죠. 그게 인문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브랜드의 주제도 되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센터 연구원 장영란)
 
“인간을 다스리려고 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인간이 다스릴 수 있는 브랜드. 그런 브랜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요.” (문사철 기획위원 강신주)
 

‘인문학적인 가치’ ‘인간과 공명’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원형’ ‘인간적인 냄새’…. 인문학적 브랜드를 설명 하며 인문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각각의 단어들이 짚고 있는 요점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이 단어들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모두 동일했다. 다름 아닌 바로 ‘인간’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간을 중심에 놓고 브랜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인문학적인 브랜드란, ‘인간적인 브랜드’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자. ‘인간적’ 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다시 출발선에 섰다.

 

 

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만큼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했던 인물이 또 있을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니체는 인간적인 것에 대해 평생을 고뇌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는 너의 주인이며 동시에 네 자신의 미덕(보편적인 도덕률; 편집자 주)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다. 과거에는 미덕이 너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 미덕은 다른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너의 도구여야 한다. 너는 너의 찬성과 반대에 대한 지배력을 터득하여 너의 더 높은 목적을 필요할 때마다 그 미덕을 붙이거나 떼 내버리는 것을 배워야만 했던 것이다.”

니체는 결국, ‘보편적인 도덕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삶의 창조자이자 결정자가 되는 것이 곧 ‘인간적’인 것이라 얘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제각기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기준을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잣대로 내세울 수 있는가가 그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던 거다. 위버멘쉬 (ubermensch), 우리나라에서는 ‘초인’이라 번역되는 이 단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니체는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런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자기 극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초인’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렇기에 초인에게 있어 고통은 그의 삶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 왜냐면 초인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고통과 고난이 와도 웃어라. 그대, 패배하고 쓰러질지 라도 다시 일어서서 싸우는 전사가 돼라.… 그 고통마저도 즐길 수 있을 때 그대 진정한 초인이 되리라.”

 

니체에게 있어 인간적인 것이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주인이 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삶의 진짜 주인이 되었을 때 자신만의 도덕률을 만들어, 그 도덕률을 이루기 위해 몸을 불태우는 ‘번개와 같은 초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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